"부사장님 좀 도와 주세요"
"응급실에서 입원도 퇴원도 안시켜주고 이밤중에 그냥 기다리래요"
"엄마는 많이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예요"
퇴사한지 벌써 5년이나 되는 김 베닐다에게서 온 다급한 전화였다.
중증의 간경화를 앓고있는 베닐다의 어머니가 그 증세가 악화되어
복수가 차오르고 가끔씩 간혼수가 계속되고 있어 마지막 방법으로
간이식 수술해야 할 지경에 이르러 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주치의 지시로 수술을 위한 각종 검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밤 7시가 넘도록 입원실이 없어 입원하지도 못한채 있었고
응급실 침대도 배정해주지 않고 퇴원절차도 해주지 않아
오후내내 모녀가 응급실 귀퉁이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베닐다 엄마는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러 다급하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무말 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갔다가 내일 아침 다시 오면 되잖아"
"주사기 터미날이 엄마에게 꽂혀 있는데요?"
"집에서 20분 거리밖에 안 되는데 무슨 걱정이야"
"네..."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 병원과 연결되는 그룹의 몇 사람에게
전화로 사정을 말하고 조치해 줄 것을 부탁을 했지만
병원 원무과직원들이 모두 퇴근 한후라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늦은 밤시간 강한 메시지가 원무과 담당자에게 전달 되어
베닐다 모녀는 다음 날 오기로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간이식의 공여 당사자가 베닐다인줄 몰랐었다.
그로부터 한달쯤후 오늘 아침.
내 핸펀에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찍혔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 이식 공여자가 베닐다임이 나타나는 메시지였다.
엄마와 둘이 병원에서 간 이식을 위한 검사를 받고 있었다는데도
나는 이식 공여자가 베밀다인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베닐다는 내 큰딸 아이와 동갑내기다.
회사일에 너무 열심이었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일처리때문에
임원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는 베스트 멤버였기에
내 딸아이처럼 마음을 주고 있었고 베닐다도 나를 친아빠처럼
스스럼 없이 잘 따라 주었다.
회사에 입사할때 단 1%의 사투리도 없어 서울아이인줄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상경한지 얼마되지않는 경상도 처녀라서 놀랬고
베닐다의 엄마가 내 아내처럼 간경화 환자라는 사실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서실에 근무하는 베밀다는 시간이 나면 틈틈히
간 경화 환자들이 어떻게 투병해야 하는지 자주 물어와
투병에 성공하고 있는 아내의 민간요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곤 했다.
베닐다가 퇴사를 한 것은 엄마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보수가 더 좋은
일꺼리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었다.
베닐다의 나이가 벌써 스믈아홉.
고향인 마산에서 혼자 상경하여 힘들게 살아 온 베닐다.
엄마가 간경화 판정을 받자 한푼도 쓰지않고 지독하게 모았던 돈을
모두 털어 병원 가까운 분당에 전세로 오피스텔을 얻어
엄마를 서울로 데려와 같이 살며 엄마에게 희망을 주고 따뜻하게
보살피며 살아 온 베닐다.
"대단한 결심을 하였구나..."
"아니예요..엄마가 생존할 가능성은 이것밖에 없는 걸요"
"엄마와 같이 입원하여 수술하면 저는 보름이면 퇴원할 수 있어요"
"수술후 1년은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는 퇴직처리 했습니다"
"이제 결혼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엄마와 나의 수술비와 후속비용은 1년동안 1억원이나 들어 간대요"
"돈은 아빠가 마련하셨는데 넉넉치 못해 큰재산을 처분하셨을꺼예요"
"무엇보다 엄마가 수술 부작용없이 정상으로 돌아오셨으면 해요"
"무사히 수술을 마치도록 기도해주세요..부사장님"
그리고 감동을 주는 그 아이의 한마디.
"제 간요? 그건 원래 엄마꺼였잖아요. 다시 돌려드리는 거예요"
씩씩한 그 아이의 한마디에 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무어라 위로의 말한마디를 해주어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TV나 방송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가족갈등의 비정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렇게 뜨거운 엄마와 딸아이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베닐다와 그 아이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베닐다 엄마의 무사함을
간절히 기도한다.
아직도 귓전을 때리는 베닐다의 한마디.
"엄마꺼 다시 돌려 드리는 거예요"
나는 과연 내 어머니가 장기이식이 필요한 중한 병에 걸렸을때
그 아이처럼 내 살점을 뚝 떼어 드릴 수 있을까...
오늘은 베닐다의 한마디에 몇번씩 고개를 숙이게 하는 하루였다.
주여...
저 모녀가 탈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게 도와주소서...
Handel/Opera Rinaldo "Lascia ch'io pianga"
첫댓글 병역비리의 파문을 안고 떠들썩하게 입대했던 아들녀석이 제대하여 정신 없던 중...오랫만에 메일 확인..보내주신 아름다운 사연 가슴이 뭉클...이들녀석을 앉혀놓게 읽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