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종 겪었던 것처럼,
확실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뭔가를 잃은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로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뭐 있는가.
오늘이 내 존재의 첫날이거나 마지막 날인 양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롤러코스터, 그게 내 삶이다. 삶은 격렬하고 정신없는 놀이다.
삶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 위험을 감수하는 것,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
자기 자신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고,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만과 불안 속에서 허덕이는 것.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이미 그를 잃었다 해도, 나는 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번 셈이니까.
불행의 연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까우니까.
인간 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사드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지만, 사디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인간의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잘못 살 사치를 부리기에는 삶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다.
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똑같은 속담이 존재합니다.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도 느끼지 못한다는 속담이죠.
그런데 전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감히 단정합니다. 우리가 억누르려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감정들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마음에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유배중이라면, 두고 온 집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애쓸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서 그 사람을 떠올릴 겁니다.
ㅡ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중에서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