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파옥초(破屋草)이야기]
옛날에 어느 노승(老僧)이 하안거(夏安居)를 위해 양식시주(糧食施主)에 나섰어요. 평소 인심 좋기로 소문난 마을에 들러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托鉢)을 위한 염불송경(念佛誦經)을 하자 안주인이 나와 시주를 하는데 얼굴에 수심(愁心)이 가득했어요.
마음속으로 부처를 잊지 아니하고 불경을 외우는 것을 염불송경(念佛誦經)이라 하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을 시심시불(是心是佛)이라 했음이니 노승은 부인에게 마음의 근심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부인이 하는 말이 “황소 같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힘을 못 쓰더니 급기야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노승이 하는 말이 “소승이 타고난 의원은 아니나 그동안 갈고 닦은 것이 있으니 남편의 환우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부인은 노승을 남편이 누워있는 방으로 인도했는데 노승이 남편의 안색(顔色)을 보고 진맥(診脈)을 한 결과 다른 맥은 왕성하나 양기(陽氣)맥이 완전히 소진한 상태였지요.
노승이 안주인의 신색(神色)을 자세히 살펴보니 원인이 거기에 있었어요. 안주인의 강한 음기(陰氣)가 문제 였지요. 그러니까 부인의 강한 음기(陰氣) 때문에 남편의 양기(陽氣)가 고갈되어 생긴 병이었어요.
이때는 기(氣)와 혈(血)에 좋다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을 먹으면 좋으련만 십전대보탕은 값이 비싼지라 마침 담장 밑에 흔하게 자라는 약초풀이 있어 이것을 뜯어다 안주인에게 보이며,
이풀을 옮겨 심고 잘 가꾸어 반찬을 만들어 매일같이 먹이면 남편의 병이 감쪽같이 나을 것이라 했어요.
그러자 부인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그 풀을 잘 가꾸어 음식을 만들어 먹였더니 신기하게도 남편은 점차 기운을 차렸어요.
부인은 여기에 힘입어 더욱 지극정성을 다한 결과 남편은 완쾌되었고 왕년의 정력(精力)보다도 더 힘이 세어진 남편이 되었지요.
그러자 음기가 센 부인은 온 집안 곳곳에 이 풀을 더 심었는데 나중에는 마당에 까지 심었고 심지어는 기둥 밑까지 파헤치고 그 풀을 심었어요. 그 풀만 먹은 남편은 양기(陽氣)가 더욱 왕성해져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같이 꿈같은 세월이 흘렀어요. 부인은 너무 좋아 집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고 이 기둥 저 기둥 밑을 온통 파헤쳐 이 풀을 심어 댔어요.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자 집 기둥 모두가 붕 뜬 듯 솟구쳐 올라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말았지요. 이렇듯 집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심어댔던
그 영험한 풀(약초)의 이름이 바로 ‘집을 부수고 심는 풀’이란 뜻의 파옥초(破屋草)라 하지요. 이 파옥초란 이이 지금은 ‘부추’로 불리고 있어요.
예부터 부추는 “부부간의 정을 오래토록 유지시켜준다“하여 정구지(精久持)라 했지요. 또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좋게 한다고 하여 온신고정(溫腎固精)이라 했으며,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 하여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했어요.
또 과부 집 담을 넘을 정도로 힘이 생긴다 하여 월담초(越譚草)라 했으며,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면 초가삼간이 무너진다하여 파옥초(破屋草)라 했지요. 그리고 이를 장복(長服)하면 오줌줄기가 벽을 뚫는다 하여 파벽초(破壁草)라고도 했어요.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밀과 ”부추 씻은 첫물은 아들 안주고 사위에게 준다“는 말도 있지요. 아들에게 주면 좋아할 사람이 며느리 이니 차라리 사위에게 먹여 딸이 좋도록 하겠다는 뜻이지요.
또한 ”봄 부추 한단은 피한방울 보다 낫다“는 말도 있으며” 부부사이 좋으면 집 허물고 부추 심는다.“는 옛말도 있어요.
부추는 체력이 떨어져 밤에 잘 때 식은땀을 흘리거나 손발이 쉽게 차가워지는 사람, 배탈이 자주 나는 사람에게 좋다 하지요.
부추는 동아시아가 원산으로 중국 동북부에는 지금도 자생지대가 있으며 일본, 중국, 한국, 인도, 네팔, 태국, 필리핀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어요. 그러므로 부추는 동양에서만 식용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재배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식용으로 먹은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기록으로는 1236년에 나온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 처음이지요. 일본에서도 1C경의 신선자경(新選字鏡)에 나오고 그 이후 본초화명(本草花名)에도 등장 하지요.
이와 같이 부추는 동아시아의 한, 중, 일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제사, 약용, 식용 등의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부추는 한양을 제외하면 모두 정구지(精久持)라 했는데, 유독 한양만 부추로 부른 까닭은 한양에 한자를 쓰는 사대부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부추는 중국말로 구채(韭菜)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양사람들이 부추로 부른 까닭은 우리말에 ‘ㄱ’과 ‘ㅂ’을 헷갈리기 때문인데 고구려를 ‘복클리’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서 구(韭)의 고대 음을 ‘부’로 읽고 채(菜)의 고대 음이 ‘추’이기 때문에 ‘부추’가 되었다고 하네요.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