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내가 쓰지도
않은 돈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다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강남에 있는 능인선원
불교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 무엇을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타입이었다.
고통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공부인 만큼
독하게 몰입했다.
기도를 하면 가피를 입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영험담에도 귀가 솔깃했다.
경전을 읽고 사경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절과 염불을 했다.
어느 새 나의 아침은 천수경으로 시작해서 절과 참선으로
이어졌다.
가끔씩 인연 있는 절에 가서 철야정진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난 죄는 언니가 빚을 진 것이지만
거기에는 나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개입돼 있었다.
언니를 통해 나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모든 결과가 나의 어리석음에서 온 사실을 인정했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불교는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언니에 대한 미움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못난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없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깨달음 뒤에도 수행을 계속하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로소 불교공부가 내 삶의 중심이 됐다.
이제 어떤 곤란을 겪어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공부에 더욱 속도를 냈다. 공부방에 모셔놓은
부처님 앞에 앉아 한참동안 염불을 하고 있으면
사방에서 향내가 날 때도 있었다.
염불을 하면 시방세계에 계신 화엄성중이 엄호해주신다는
가르침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나의 공부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선을 하려고 앉아 있으면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본 사람의 과거도 그림처럼 읽혀졌다.
때로는 꿈에 이름을 들었던 사람을 현실에서 직접 만날 때도
있었다.
부처님 시대에 여러 수행자들이 신통을 부렸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니었다.
점점 수행에 재미가 생겼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도
부처님처럼 천안통, 숙명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무당들이나 하는 짓인 줄 모르고 확철대오인 줄 알았다.
그러다 우룡 스님의 책을 읽고 그것이 절대로 수행자들이
빠져서는 안 될 마구니라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 법대로 사는 공부가 중요하지 귀신을 보고 신통을
부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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