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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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요한 8,21-30: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들어올려지실 주님!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21절) 바리사이들이 그분을 찾는 이유는 그분을 겨냥하여 음모를 꾸미기 위해서이다. 좋은 것과는 거리가 먼 온갖 이유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 많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장사꾼이나 다름없다. 올바른 방식으로 찾는 이들만이 평화를 발견한다. 말씀을 찾는 이, 그분께서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그분을 찾는 이들이 올바로 그분을 찾는 이들이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그분을 미워했던 사람들은 박해하려고 찾았으며,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그분을 찾았다. 바리사이들은 악의에 차서 잘못된 방식으로 그분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자기 죄 속에서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잘못된 의도로 찾는 이들에게 일어난다. 예수님은 악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시는 데 이들은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또한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23절) 예수님께서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마태 6,21 참조) 땅에 보물을 쌓는다면 그 행위 때문에 아래, 땅에 속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면(마태 6,20 참조) 그는 위로부터 태어난(요한 3,3 참조) 사람이며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을 지니게”(1코린 15,49)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은 모든 하늘을 거친 다음 가장 복된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24절) 자기 죄 속에서 죽는 이는, 비록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진리에 관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믿음을 말하지만 행실이 없다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예수님의 의를 믿는 이는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그분의 지혜를 믿는 이들은 어리석은 말을 하지도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 자체가 그를 죽이고 만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25절) 하고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르치며 많은 기적을 보여 주었는데도 그렇게 묻고 있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25절) 이 말씀은 그들은 그분의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또 그분이 누군지 알 자격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들의 말은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한 마디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라는 말씀은 당신 자신이 이미 “한 처음”(요한 1,1)이신 말씀이심을 나타낸다.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 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26절)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미래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당신도 참된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참되신 분의 아들로서 당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27절)고 한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28절) 이 말씀은 당신이 수난을 통하여 들어 올려지기 전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들어 올려짐’은 십자가로 들어 올려짐이며 이 들어 올려짐은 그분의 치욕이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립 2,8)하셨기 때문이다. 이 수난은 이 말씀을 들은 이들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29절)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셨으나 언제나 함께 하셨다. 그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이 가신 곳이면 어디나 계셔야 했다. 아드님을 버려두실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씀하셔서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하신 경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기회는 부여되어 있지만, 그것을 거절하게 되면 다시 그 은총의 때를 맞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깨어있으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총의 때를 잘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순간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느냐 않느냐 하는 결단을 내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결과도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처: 저는 주님의 종 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如山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