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환한 그늘 ●지은이_임경숙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0. 12. 12
●전체페이지_104쪽 ●ISBN 979-11-86111-88-8 03810/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0,000원
인생 항로의 고투 속에서 밝은 길을 찾아가는 시
임경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환한 그늘』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임경숙 시인의 시집『환한 그늘』의 소재 혹은 주제는 꽃과 식물의 이미지와 함께하는 사랑이다. 그것은 국내외의 여행지에서 보고 깨닫는 지혜이다. 또한 나날의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실이다. 따라서 임경숙 시인은 삶 속에서 부딪히는 일상과 감정을 자신만의 사랑의 어법으로 『환한 그늘』을 펼친다.
마음의 진화는 짝짓기의 고통과 기쁨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가설//단 한 번 눈맞춤으로 그대가 불 속에 갇혀 있음을, 환해서 너무 환해서//그대, 어디서 보았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옷깃을 스쳤는지//들녘을 적시는 봄 아지랑이같이 아슴아슴 낯설지 않은 까닭에//열어둔 문틈 사이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 생이 저무는 줄 모르고//뿌리박힌 자리에 따가운 세월 홀로 바래지다가 저물녘 문을 닫습니다//그대를 닫습니다
―「자귀나무」 전문
「자귀나무」는 시인의 마음을 그대―타자에게 호소하는 연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타자에 닿지 못하는 주체의 고통, 불화와 소외에 의한 시인의 불안과 갈망 혹은 체념이 이 시속에 있다. 사랑의 욕망은 죽음이 오기까지 평생을 유지하는 욕망이기에 “한 생이 저무는 줄 모르고//뿌리박힌 자리에 따가운 세월 홀로 바래지다가 저물녘 문을 닫습니다”는 표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타자의 존재―거울에 비친 나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나르시스라는 라캉의 해석이 있다. 임경숙 시인이 ‘자귀나무’를 욕망하는 고통은 자귀나무처럼 아름다운 자신을 욕망하고 그에 이르지 못하는 슬픔을 말한 것으로 변환된다.
은퇴 이후로 꿈을 유보하며 달려왔던 길 앞에는 뜻밖에도 암초들이 떠억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껏 순항하던 배가 엔진이 꺼지고 까마득한 먹통으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풍어를 꿈꾸며 설레던 날들 이제 다 지나가고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보다 병고가 먼저 와서 기다립니다 이전보다 이후의 그림자가 더 짙어 보입니다 전방엔 급커브 구간이 잦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브를 돌다 보면 들짐승 비명 같은 울음을 터트릴 수 있고 도깨비불처럼 희번덕거리는 분노에 휘감길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파리해진 눈빛이 쏘아보는 그 너머에 무언가 끊임없이 불쑥불쑥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는 길은 급커브 구간입니다 크나큰 반경을 그리며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입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 아이스 도로인지도 모르니//부디, 부디 서행하십시오
―「급커브 구간」 전문
「급커브 구간」은 인생의 커브와 생각의 커브를 돌아가는 임경숙 시인의 마음 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중년의 시간이 지나간 시인에게 인생이란 “꿈을 유보하며 달려왔던 길”인데 현실은 “암초”와 “병고”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다.
전방에 “블랙 아이스 도로”가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인생의 위험 구간은 “들짐승 비명 같은 울음을 터트릴 수 있고 도깨비불처럼 희번덕거리는 분노에 휘감길 수도 있”는 구간이다. 이 시는 보여지는 자가 아닌 보는 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 임경숙 시인은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기보다는 그 감정이 흘러가는 길을 보면서 험한 길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밝은 길을 찾아가려는 시인이다.
한 영혼에게 삶이란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산티아고 노인에게로 가고 싶다
운 좋은 사람들 낚싯대에 걸려든 잡어들 말고
한 생을 걸어볼 만한 시퍼런 정신의 청새치
피에 젖은 두 손으로 움켜쥐고
한판 승부 죽기 살기로 목숨을 걸고 싶다
청춘과 운명으로부터 버림받을 생일지라도
거친 바다 저편 거대한 무대에 우뚝 서서
오기와 투지를 장전한 채 온몸을 던지는 사투
목숨 걸고 한판 벌여볼 만 하지 않겠는가
생과 사는 여유 부릴 수 없기에
자신의 한계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
“인간은 파멸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그 말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자비로워 보이지만
숨죽여 있는 물속은 한없이 잔인할지도 모르는 길
세상 바다로부터 피와 살 몽땅 뜯기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가장 나중까지 남겨질 것을 위하여 살아 있는 영혼의 뼈대
산티아고는 형형하게 빛나는 앙상한 집 한 채 지어놓았다
―「노인과 바다」 전문
임경숙 시인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썼다. 소설에 나오는 노인의 이름이 ‘산티아고’라니 흥미롭다. 가톨릭 신앙인들이 걸어서 가는 순례 성지―스페인의 산티아고와 이름이 같으니. 임경숙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청새치를 잡는 노인에 비유해 고투하는 자아를 이 시에 반영했다.
헤밍웨이는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라는 젊은 작가의 질문에 “일단 책을 읽으세요, 책을 제대로만 읽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자신의 인생이 해결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문학은 결국 작가가 화자를 빌어 자신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코치한 대화이리라. ‘책을 제대로만 읽을 수 있다면’을 ‘인생을 제대로만 읽을 수 있다면’으로 바꾸어 생각하니 책도 인생도 제대로 읽기는 어려운 과업이다. 임경숙 시인은 그 과업을 홀로 수행하며 걸어가는 언어의 산티아고 순례자라는 믿음을 이 시집은 잘 보여주고 있다.
-------------------------------------------------------------------------------
■ 차례
차례
제1부
사랑의 급소·11
자귀나무·12
얼음 강·13
석모도 노을·14
지금, 꽃을 바라보는 순간·15
웅녀의 노래·16
자이나교도·17
파랑주의보·18
폭우 속에서·20
환한 그늘·21
늦게 피는 꽃들·22
밤꽃 모텔·23
급커브 구간·24
가파도 가는 길·25
저무는 한때·26
제2부
활어(活語)를 꿈꾸며·29
장미의 날들·30
길치·31
오독한 날을 ‘오! 독한 나를’로 읽었다·32
달랏(Dalat)역에서·34
논 요일(None day)·35
유튜브 유토피아·36
운수 좋은 날·37
할리 데이비슨·38
뭉크의 방·39
애완견 목줄·40
애완견 사랑법·41
자화상·42
구름 경전·43
금계국·44
이팝꽃 그늘 아래 소녀들의 얼굴이 빛난다·45
진짜 고수·46
세월은 목에 걸린 잔가시인 양 다가왔지·47
화련에 다시 온다면·48
제3부
협죽도·51
금낭화·52
머위·53
꽃댕강나무·54
불칸 목련·55
붉노랑상사화·56
양파·57
달항아리·58
청명·59
우물·60
질경이·61
진드기·62
호박·63
매듭짓는 밤·64
12월·65
환상의 바다·66
겨울 산행·67
참게장·68
제4부
우아한 이별·71
벚꽃 지는 봄날 이야기·72
꽃이 지네·74
영정사진·75
살림이 살 힘으로 읽히는 저녁·76
요통·77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로드 킬·78
반점·79
수전증·80
천탑마을에서·82
올레길에서·83
독거의 맛·84
막장·86
노인과 바다·88
염장·90
해설│김백겸·91
시인의 말·103
■ 시집 속의 시 한 편
뭇 꽃들이 자취를 감추는 가을날
북쪽 산자락이 환하다
이제서야 꽃 나래 펼치는 민들레 씀바귀 도라지
철을 놓친 것들이 서둘러 피어난다
한 번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고
때가 좀 늦은 것뿐이라고
산그늘에 가려져 그림자처럼 살았대도
한 생을 여미기 전에 꽃 시절 돌아온다고
시샘 없이 화사해진 그림자 길
걸어가는 오후가 가볍다
ㅡ「환한 그늘」 전문
■ 시인의 말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뭇가지 선명하듯,
추위가 다가올수록 강물 소리 깊어지듯
2020년 늦가을 아침 비단강 가에서
임경숙
■ 표4(약평)
임경숙 시인의 시는 감정이입에서 첫발을 내디딘다. 표현 주체인 시인이 표현 대상인 자연이나 인간에 감정을 투사하여 그쪽의 말을 되받아 쓰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들은 의인법적 표현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시 안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시인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들은 부드럽고 살가우며 나긋나긋 고백적이다. _나태주(시인)
임경숙 시인의 시편에서 사랑은 본래 주체와 객체가 이루는 하나됨으로 표상되거니와, 이들 관계가 언제나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귀나무」, 「얼음 강」 등의 ‘그대와 나’, 「지금, 꽃을 바라보는 순간」, 「장미의 날들」 등의 ‘나와 꽃’, 「금낭화」, 「환한 그늘」 등의 ‘꽃과 꽃’이 그러하다. 그리고 또 다른 시편에서 드러나 있는 사랑이 「석모도 노을」처럼 “눈 깜짝할 사이 저녁 어둠과 한 몸 되는” 경우도 있지만 「웅녀의 노래」처럼 “동굴 속에 가두어 지켜온”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경숙 시인이 모든 관계의 본질을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_이은봉(시인,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 임경숙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2014년 『서정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그녀였던 나』가 있다.
첫댓글 임경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환한 그늘』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시와에세이 후원 회원님께는 이번 내 발송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