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율법적 삶이
무엇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믿음의 삶을 향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세속적인 삶을
줄이거나 멈추고
오직 교회와 말씀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한다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삶은 자기가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자기 열심과 각오와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그런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므로
주가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며
자신은 주어진 삶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삶입니다.
율법적 삶을 살면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율법적 삶이 무엇임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적 삶을 살면서
믿음의 삶의 열매를 구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더 열심히 뭔가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적 삶은 타고난 생명으로
사는 모든 자들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율법적인 그리스도인들과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로 사는
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율법적 삶에서 믿음의 삶으로
전환하려면 말씀을 통해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 온
율법적 삶이 잘못이었음을 알아야 하므로
믿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적 삶에 문제가 있음을 충분히
인식한 사람이 부르심을 입는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의 말씀을 듣자 마자
곧 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지막 때,
곧 자기 열심에 의한 믿음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때에
이르지 않고서
복음을 듣는 자가 있다면
믿음의 말씀을 옳다고 여기기는 하나
율법적 삶을 버리고
믿음의 삶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한 밤 중에 그리스도를 찾았던
니고데모와 같이 말입니다.
그는 영생에 관하여 궁금증이 있어서
그것을 풀려고
낮의 일반인들의 눈을 피하여
그리스도를 찾아 진리를 들었어도
쉽게 자신의 율법적 삶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옳다고는
여겼지만 자신의 율법적 삶을
쉽게 박차고 믿음의 삶을 따르기를
주저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에게
확고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복음의 말씀을 듣고
곧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었지만
그들의 율법적
삶의 사고가 완전히 깨어지고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하기까지는
삼년이 넘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필요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사고의 전환이란 믿음을 향한 삶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실제적인 삶에서
조금씩 율법적 사고의 변화를 경험하며
타고난 생명에 대한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율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믿음에 속한 사고로 전환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타고난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생명은 그리 호락 호락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지에
제시된 것처럼 자기 인생의 왕좌에서
자신이 내려와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 같은 일이
순식간에 자기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지 않은 기간동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며
사고의 변화와 함께 삶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져 갈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의지로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지닌 가치가
세상의 무엇보다 숭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의 본질은 최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단의 본성의 지녔기
때문에 복음이 가져다 주는
하늘의 영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그 영광을 구하다가
하늘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의 성향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듣고 하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타락한 생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음이 제시한 것처럼
그런 자기 생명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코 진정한 믿음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곧 타락한 생명을 소유한
자기에 대한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하늘의 영광을 가져다 주는 믿음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참된 믿음을
구한다 하더라도
자기 생명으로 살고자 하는 사고가
자기를 그리스도께 드려 그리스도로
살고자 하는 사고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믿음의 삶이 아닌
율법적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 삶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같은
전철을 밟게 할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다 해도 저주와 멸명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으로 사는
율법적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생명 삼는
믿음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고난 율법적 생명이 버려지는
십자가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지속적인 사고의 전환과 함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는
삶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삶을 향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마땅히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듣고 실제적 삶에서
말씀을 체험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와 동일한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말을 듣고 그 말씀 중심의 삶을 통해
삶의 실제적 경험을 통한 사고의 전환이
자주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곧 사고의 전환을 위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자주 머물러야 합니다.
자신의 실제적 관심의 정도에 따라
사고의 전환도 그만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대표적 사고의 전환은
역시 율법적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해 온 자기 생명으로
믿음의 삶을 이어 온 모든 삶을
과감히 버리는 일입니다.
만일 그런 삶을 쉽게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믿음의 삶이 더뎌질 것입니다.
솔로몬의 말입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예배)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 하는 자가
일반이로다'(전9:2)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선을 행하고 깨끗하게 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솔로몬은 다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다른 곳에서의 말씀도
모두 일치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는 의미는
선을 행하는 자나, 악을 행하는 자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하는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된 삶을 사는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다 죄인이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타고난 죄인의 생명으로
살면서 악하게 사는 것이나
하나님을 위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나
다 같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그것이 해 아래서
가장 악하다(전9:3)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며
그는 당신에게 율법적 사고로써
자기 생명으로 살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타고난 생명으로 사는
삶에 대해 죽고
거룩한 생명으로 사는 삶의 실제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으로 사는 모든 삶이
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멈추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길목에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기 전에
믿음의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율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믿음의 사고로 전환되기까지
포기치 않고 구원받을 믿음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