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노트북 앞에 몸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2주 전,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ㅎㅎ
연주회로부터 보름 전쯤이었을까요. 회사에서 급작스럽게 '강제 이직'을 당해(*통보 후 3일만의 인사발령) 그룹사 내 새로운 브랜드로 (그것도 그 동안 드러내놓고 일종의 반감을 표했던) 이동, 박탈감과 그 외 각종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던 저는 2주간 두 브랜드의 회의체를 오가며 겸직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던 터였는데요. 그러면서 약간의 억울한 마음과 함께 정신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었답니다. 연주회 마치고 얼마 안 가 몸살감기가 찾아온 것도 어쩌면 그 동안 참아만 왔던 뭔가가 폭발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렇게 꽤나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치러내야 했던, 생애 첫 반도네온 솔로 연주.
2주째 아직 반도네온과 마주하지 않고 있는 저이지만.. 그럼에도 첫 무대는 다행히 괜찮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 동안 배움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곡을 연주한 경험이 손에 꼽는데요. 좋아하는 곡, 들으면 눈물날 것 같은 멋진 곡들을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야 크지만 왠지 '연주의 기본기' 같은 것에 대한 혼자만의 기준 혹은 마음가짐이랄까요. 마치 하농과 체르니를 어느 정도 연마한 후에 소나타집을 열어보고 싶다는, 그런 묘한 생각이 머리 속에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이지만, 아무튼 초창기에는 이 반도네온이라는 악기 자체에 내 손이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시점이 오면 그 때 다양한 곡들을 연주해 보고 싶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때는 오지 않아.....)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번 연주회에 올릴 곡 선정을 8월 말? 9월 초?에 하고 3개월 정도 매우 타이트하게 연습을 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한 달 간은 솔직히 조금 괴로웠어요. 첫 솔로인데, 잘 하고 싶은데, 난해한 곡이고, 시간은 얼마 없고, 한 술 더 떠 회사일은 카오스고… 다들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 나만 기본도 만들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별 수 있나요. 그냥 계속 하는 수밖에.
약간은 수험생의 마음으로, 오랜만에 ‘주 2회 퇴근 후 맹연습’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부담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니, 어쩌면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는 말이 맞겠네요. 처음에는 그저 악보를, 음악을, 피아졸라의 연주를 느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걸 따라해 보고 싶었고, 연주회에 임박해서는 저만의 느낌을 살려 보고 싶었어요.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Loca Bohemia. 선생님이 ‘정처 없는 보헤미안’ 이라고 멋지게 번역해 주신 이 곡은 (보헤미안 착장을 하고 싶었는데 이 또한 실패… 그냥 외모부터 실패) 들을수록, 연주할수록 점점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신비한 곡입니다. Oblivion, Adios nonino 같은 곡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반도네온의 정서를 진하게 전해 주는. 첫 솔로 연주, 라는 강력한 꼬리표를 달게 된 곡인 만큼 앞으로 평생 친구로 삼고 종종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깊은 매력을 선보일 수 있게요. 우선은 연말, 이번에 컨디션 난조로 못 오신 부모님께 직접 연주해 드리는 것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함께 한 연주자 분들은 물론, 앞으로 함께 할 다른 모든 분들까지
앞으로 기나긴 반도네온 인생 차분히 걸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께 늘 깊이 감사 드립니다.
모두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신년회에서 만나요-!
첫댓글 제가 아라님에게서 늘 배우는 부분은 반도네온을 대하는 진지함인 것 같아요. 집중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습이 힘들었던 때가 있어서 아라님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멋진 연주 해내신 것에 더욱 박수를 보내드려요👏🏼👏🏼👏🏼
앗 진지댓글! ㅎㅎ 정민님 지영님 포함, 저희가 또 한 진지하죠.. 늘 좋게 봐주시고 힘이 되는 말씀 해주셔서 감사해요. 🙂
오~ 나도나도! 저도 그 연주 듣고 싶어요...
준비 과정 속의 상황과 아라님의 느낌들을 진지하게 읽다가
괄호 나올 때마다 빵 터집니다.ㅋㅋㅋ
아라님 매력 만점!!!
크큭 '보헤미안 고아라'는 그냥 제 캐릭터로 만나보세요! 지은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이 얼른 오기를 고대합니다아-!
연주회를 앞두고 회사 인사이동으로 정신없고 너무 복잡했을거같은데…..게다가 이토록 어렵고 감성적인 곡을 준비하려니 얼마나 준비과정이 힘들었을까…..감정이입되네요;;;;;;
나도 연주회앞두고 회사일도 복잡햇고 완곡도 너무 늦게하고 정신없었더랬습니다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편안하고 부드러운 연주를 할 수 있다니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할수 있게 만드는 연주. 최고네요~~~!
그리고 아라님, 카메라 너무 잘받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