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어머님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저자 : 조현옥
저자 조현옥 시인은 1965년 충북 옥천 소정리에서 태어나, 1988년부터 광주에서 살고 있다.
1992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첫시집『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어』, 두번째 시집 『무등산 가는 길』, 세번째 시집『4월의 비가』, 네번째 시집 『일본군 위안부의 눈물』을 출간했다.
2004년에 시 ‘이라크 파병을 결사반대한다’ 외 25편을 공안문제연구소가 문화 예술계의 인사로 감정을 의뢰, 전남청 보안과에서 수사를 받고 ‘찬양 동조’라고 적시하게 된다.
2005년 8월, 법원으로부터 창작시와 관련 국보법 위반 출두 요구서를 받고 전남청 보안 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2011년 5월 17일, 광주 민주화 운동 31주년에 망월동 신묘역에 걸린 시 ‘휴전선 미국이 시킨 짓’이라는 작품을 작가와 협의하지 않고 경찰들이 몰래 철거해버렸다.
2014년 6월에 ‘세월호 시국 선언’ 문학인 754명에 동참, 이른바 ‘블랙리스트 시인’이 되었다.
전) 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광주전남 공동대표, 평화실천광주전남불교연대 평화통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광복 60주년 기념 6.15공동선언 5주년에 김포에서 평양 순안 공항 직항으로 평양 문화 유적을 참관, 대집단 체조 ‘아리랑’을 관람하고 신계사, 묘향산 보현사도 다녀왔다. 2009년 봄에는 휴전선을 지나 버스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광주근장협 홍보대사, 광주 평화나비 소모임 대표를 맡았었고 현재는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의 서문 내용》
오월 어머니의 눈물 " 시집을 출간하며
~오월의 어머님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나는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의 고장 옥천에서 태어나 언제나 고향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 왔다.
내가 광주에 시집 와서 둥지를 튼지 어언 2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내 고향에서는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안고 광주에서 인연을 맺고 산 세월, 그간 나는 정지용 시인의 시 정신을 이어 받아 시인이 되었다.
광주에 살면서 시인이 해야 할 역사를 알았고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를 광주에서 알았다. 가끔 광주 사람들을 만나면 충청도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라고 하는 말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광주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안일한 시인이 아닌 시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시를 쓰는 마음이다, 나의 시는 분명 광주의 노래 혁명의 노래를 쓴 광주 시인들과 같이 뜻을 함께 노래했다. 나의 시는 광주 어머니들을 생각하게 되고 어머니들의 심장이 되고 싶었다. 오! 광주여! 광주의 어머니여!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날 5월 광주를 생각하며 살았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시대, 나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광주에 있는 국가 기관 수사대에 끌려가 몇 번의 조사를 받았다. 광주에서 인권의 광주에서 그러한 일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광주는 혁명의 광주는 인권의 도시다. 그러한 도시 광주에서 1996년 두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김영삼 정권에 의해서 시인에게 인권 탄압이 가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출두 요구서도 없이 아침 마다 걸려온 전화 협박에 나는 시달리고 그에 견디지 못하고 광주 남부 경찰서 보안수사대에 들어가 하루 종일 수사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오월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1996년 어느 가을 날, 나는 보안수사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때 경찰은 취조 전에 경찰서에 남아 있던 고문실을 보여 주었다. 여기가 바로 이철규가 고문을 받았던 곳이라고 경찰이 말했다. 타일이 붙은 욕조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서움증이 들었다.
나는 그날 조사를 받는데 마치 경찰은 일본 식민지 시대 조선에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군들을 일본 순사들이 조사하듯 나를 큰 소리로 협박했다. 한 경찰은 나를 조용조용 달래면서 뭔가를 엮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기도 했다. 시인에게 인권을 무시하는 광주였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순간이였다. 나는 광주 어머니들에 대한 시를 쓰고자 했다.
나의 시가 광주를 생각하며 광주의 혁명을 생각하며 광주 민중들이 주장했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였다. 민족의 자주화를 염원하는 시인에게 주어진 저항은 바로 국가보안법 이었다 그러한 악법으로 나를 구속하고 그들은 그들의 성과를 얻어 특진을 보장 받고 싶었던 것이다.
광주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국가보안법도 무섭지 않고 두려움이란 없다. 일본식민지 시대 저항했던 시인 윤동주. 이상화. 수만은 시인들을 생각하면 하나도 두렵지 않다.
시인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으며,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너무도 늦게 이 시집이 출간되어 해 마다 오월이 되면 통곡 속에 오열하는 오월의 어머님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내가 어머니가 되어보니 그 마음 더욱 절절하다.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오월 망월동에서 묘비를 쓰다듬으며 오열하는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다시는 1980년 5월 광주의 상흔 같은 역사가 반복 되어서는 안 되기에 나는 온 몸으로 저항하면 쓴 시 편들의 기록을 한데 묶었다. 마치 나의 삶을 정리하듯이. . . . .
조국의 군인들의 총칼에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잃고 가슴에 한을 묻고 살아가는 어머니들, 다시는 조국이, 조국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총칼을 겨누는 통한의 아픔이 없기를 미국의 개입이 없이 신군부 세력이 광주 민중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은 불가능 하다.
충절의 고향, 내 고향 충청도를 향하여서는 고향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조국을 위해 서있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정지용 시인의 민족 혼으로 멀리 광주에서 시인이 되어 진실을 노래하는 민족 시인답게 살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 했다.
이제 1980년 오월에 조국의 자주화를 외치며 산화해간 영령들도, 시인이 쓴 이 시를 읽고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광주에 어머니들을 가슴으로 그리워하며 있을 것이다.
나는 시집을 내기 위해 새벽이 오는 시간 부터 밤에 별이 질 때 까지 노동을 하는데 노동의 시인이 이번에 시집을 발간하는데 있어서, 나의 피와 나의 심장에 솟아오른 땀이 맺은 시어들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국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자라 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국 애족의 소년, 소녀, 청년, 학생, 민중들이 이 시집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진실을 기록하려는 자들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과의 전쟁, 기억을 살리려는 자들과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슬픈 사실이다.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고 그 상처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행복임을 기억하자.
아직도 1980년 5월 최초의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가? 북한군이 개입 했다는 종편의 가짜 뉴스는 내가 이 시집을 묶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였다. 국기 문란 관련 중대형 범죄는 공소 시효가 없이 계속 수사해야 한다.
이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온 몸으로 기록해야 한다. 2017년"촛불 혁명" 그 지난한 투쟁의 기록들을 보면서 느리지만 더디고 우직한 발걸음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역사가 무엇인가를 바로 보아야 한다.
펜의 노예로 살 것인가? 펜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과 살것인가? 거짓을 증명하고 진실과 살것인가?
통일 염원 72년 조현옥 합장
(2017년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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