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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코 수와나이(Akiko Suwanai(February 7, 1972~ )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엄격한 고전주의자이자 화려한 음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아키코 수와나이(諏訪内 晶子, Akiko Suwanai, 1972- )는 깍아지른 듯 완벽한 외모, 모두를 빠져들게 하는 세련되고 매혹적인 음색, 따뜻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을 지닌 일본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그녀는 이미 1990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최연소 우승자이자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Paganini Competition)' 2위 입상,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Queen Elisabeth Competition)' 2위 입상 등 세계 무대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최근 들어 절제된 뚜렷한 음색의 조화, 강렬한 감정표현 등 타고난 음악적 재능(음악 자체가 가진 즐거움을 그대로 끄집어낼 줄 아는 연주자, 감성적이면서도 오점 없는 깨끗한 기교로 부드러우면서도 스위트한 소리를 선보이는 연주자)으로 더욱 호평받고 있다.
아키코 수와나이는 1972년 2월 7일 생으로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비롯해 수많은 경연대회에서 입상했으며, 세계의 거장들과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차세대 거장이다.
필립스(Philips) 레이블 전속으로 여러 장의 음반도 발매했으며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서양사, 철학을 공부한 재원답게 아주 지적인 연주가이다.
일본의 왕세자빈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수와나이의 부모는 그녀가 생후 1년 6개월 쯤 됐을 때 5장의 LP를 반복해서 들려 주었다고 한다.
각 장마다 25곡 가량의 어린이용 노래(동요.민요)들이 담겨 있었는데 수와나이는 거의 하루 종일 이 음악들을 들었다고 한다.
2살 쯤 되자 이 노래들을 다 흥얼거릴뿐 아니라 순서까지도 정확히 기억했다고 하며 음악애호가였던 아버지가 2년 6개월쯤 됐을 때 집 근처에 있는 바이올린 스튜디오로 데려 갔다.
그런데 수와나이에게 바이올린을 한 번 쥐어줬다가 다시 달라고 하니까 소리를 지르며 거부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2살 반은 바이올린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고 해 기다리다가 결국 수와나이가 3살이 되서야 1/10 크기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시작하게 됐다.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이전에는 일본에서만 활동했으며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던 것은 9살 때 부터였고, 오케스트라 협연 데뷔는 13살 때였다.
아키코는 도호 음악대학(Toho Gakuen School of Music)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줄리어드 음악대학(Juilliard School of Music)과 독일 베를린의 쿤스테 음악대학(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에 수와나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3명의 스승을 만난다.
첫 번째는 1991년 뉴욕 줄리어드에 유학해서 배운 도로시 딜레이(Dorothy DeLay, 1917-2002).
딜레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張永宙, Sarah Chang, 1980- ), 김지연(Chee-Yun, 1970- )의 스승이기도 한 그녀는 수와나이에게 ‘연주는 즐길 수 있는 것’이란 희망을 심어줬다.
수와나이는 도로시 딜레이와 공부하기 전에는 연습이 그토록 즐겁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 스승은 베를린 예술대학에 유학했을 때의 우베 마르틴 하이베르크(Uwe-Martin Haiberg)이다.
쇤베르크 해석의 전설적 명인 볼프강 마르슈너(Wolfgang Marschner, 1926- )의 제자였던 그로부터는 테크닉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도호 가쿠엔에서 에토 도시야(Toshiya Eto, 1927-2008)로부터 배웠는데, 그는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1904-1992),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1908-1974) 등 명인들을 길러낸 에프렘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1889-1985)의 제자였다.
수와나이는 1990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자로 당시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 콩쿠르 이후 아키코는 독주자로서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1996년, 세이지 오자와(Seiji Ozawa, 1935- )가 지휘하는 보스턴 교향악단에 데뷔하였고, 이듬해엔 같은 팀과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다.
이후 뉴욕 필, 미네소타 교향악단, 신시내티 교향악단, 피츠버그 교향악단, 시애틀 교향악단 등 미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잇단 연주를 가졌다.
이름난 음악제에 빈번하게 초청되는 기회도 주어졌다.
라비니아 페스티발, 말보로 페스티발, 루체른, 에비앙, 라인가우, 베를린 페스티발에서 리사이틀을 갖거나 콘서트에 출연해서 갈채를 받았다.
유럽에서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파리 관현악단,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밤베르그 심포니, NHK교향악단, 상트 페테르스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러시아 국향, Academy of St.Martin in the Fields 등과 협연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2000∼2001 시즌에 들어서서 특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는데,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1937- ), 샤를 뒤투와(Charles Dutoit, 1936- ), 라파엘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Rafael Frübeck de Burgos, 1933- ), 파보 예르비(Paavo Jarvi), 1962- ,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 ), 로저 노링턴(Roger Norrington, 1934- ), 크리스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 )같은 거장 지휘자들과 협연하는 등 대단한 음악적 성과를 일구었다.
특히,샤를 뒤투와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커에 데뷔한 일과 프랑스 국립교향악단과 유럽을 투어한 일,몬트리올 교향악단과 협연한 것이 큰 성과였다.
또한 유럽 실내 오케스트라와 유럽연주여행을 한 것도 이 때의 성과였고,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체코 필과도 협연했다.
아키코의 데뷔 음반은 1997년에 필립스 레이블로 발표한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과 <스코틀랜드 환상곡, Scottish Fantasy>을 수록한 앨범이다.
네빌 마리너(Neville Marriner, 1924-2016)가 지휘하는 '성 마틴 인더 필즈(St.Martin in the Fields)'와 녹음했다.
이어서 차이코프스키, 비에냐프스키, 라흐마니노프의 소품을 수록한 "선물(Souvenir)'이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1998년에 발표했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자 연주회 실황을 담은 음반도 이 무렵 텔덱(Teldec) 레이블로 나왔다.
지금까지 데카(Decca) 레이블에서 5종의 음반을 발표했다.
2002년 시즌엔 정명훈(Myung-whun Chung, 1953- )이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교향악단과 연주했고, 리용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했으며,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투어에서는 펜데레츠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연주하는 일정도 소화했다.
미국에서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LA필 등과 협연하고, 1999년에 발표한 음반 '슬라브 앨범'이 상당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연주가 더 빛난 이유를 그녀의 악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만큼 이 수와나이의 악기가 명기로 손꼽히는데 '돌핀'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이 악기는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가 30년동안 직접 연주했던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다.
산토리 재단에서 무상으로 악기를 대여해 주는 데, 그녀는 이 악기를 손에 쥐었을 때 연주한지 1분만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고 한다.
그 이상 연주하면 도저히 떠나 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하며, 그 3개월 뒤에 산토리 재단이 대여를 해줬다.
수와나이는 자신의 악기에 대해서 '신성한 소리'에 가까운 매우 비범한 사운드를 내준다고 말했다.
돌핀 이전에 두 종류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했는데 '돌핀'만큼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음색을 내주는 바이올린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리에 또렷한 초점이 있고, 매일 아침마다 악기로부터 정기를 받는 것 같다면서 연주할 때마다 어쩐지 유구한 역사와 맞닿는 느낌이라고도 말했다.
아키코 수와나이는 고토 미도리(Koto Midori, 1971- ), 다이신 카지모토(Daishin Kashimoto, 1970- )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지금 까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놀라운 연주력과 뛰어난 미모로 일본에서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와나이는, 그러나 반짝하는 인기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음악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수와나이는 특히, 예민한 음악적 감수성과 그녀만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유명한데, 고음에서는 매우 빛나는 소리를, 중저음부에서는 따뜻하고 어두운 음색을 표현한다.
아무리 고난이도의 테크닉에서도 흔들림없이, 오히려 듣는 사람이 `혹시 좀 쉽게 편곡된게 아닐까`하고 의심을 갖게 할 정도로 편안한 연주를 펼친다
사라장(Sarah Chang 장영주1980~ ) :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바이올린 연주자 |
• 1992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 1993년 그라모폰 매거진 선정 ‘올해의 영 아티스트’ • 1993년 에코 클래식 신인상 • 1994년 영국 BBC 방송 인디펜던트 주최 클래식 뮤직상 신인상 • 1995년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통령 표창 • 1999년 에이버리 피셔 상 • 2004년 할리우드 볼 명예의 전당 • 2006년 뉴스위크지 선정 차세대 여성지도자 20인 |
1989년, 뉴욕 필하모닉 |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통해 데뷔한 이래 신동으로 평가되며 많은 음반을 녹음했으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장영주,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린 신동
1980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한 번도 한국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자신은 언제나 한국인임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장영주는 아름다운 음색과 뛰어난 테크닉을 겸비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장영주는 음악가 부모님 밑에서 바이올린의 신동으로 자라 일곱 살 때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정식 데뷔 무대는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이었다. 이때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장영주의 나이는 고작 여덟 살이었다. 이어서 같은 해에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1992년에는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과 여러 소품이 수록된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신동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데뷔 앨범이 발매된 그해에 최연소로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받았고 로열 필하모닉의 영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두 번째 음반을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그라모폰 매거진》에서 올해의 젊은 예술가로 선정되었고 독일 에코 클래식 신인상을 수상했다. 장영주는 이후에도 파가니니, 랄로, 비외탕, 멘델스존, 시벨리우스 등의 작품을 녹음하고 유럽과 미국의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십대 때 이미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제8회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을 수상한 장영주 (1993년)
신동에서 거장으로
성인 연주자로의 이행도 순탄했다. 1999년 장영주는 줄리아드 음대 입학과 동시에 미국에서 음악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에이버리 피셔 상을 수상했다. 이후 줄리아드의 명교수 도로시 딜레이(Dorothy DeLay)와 강효를 사사한 장영주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로린 마젤(Lorin Maazel), 주빈 메타(Zubin Mehta),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등 유명 지휘자들과 협연을 했으며, 전 세계를 누비며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장영주는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자크, 브루흐, 브람스, 골드마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비발디의 사계, 라벨, 생상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연주하며 성실하게 음악가로서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또한 성인이 된 후로 음악제나 음반을 통해 실내악 작품을 더 자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아이작 스턴(Isaac Stern), 요요마(Yo-Yo Ma) 등 쟁쟁한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실내악 연주에 참여한 음반으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와 〈현악 6중주〉를 수록한 음반이 있다.
2012 런던올림픽을 겨냥하여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한 ‘오색찬란’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장영주
그녀는 미국 태생이지만 언제나 자신이 한국임을 잊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순탄하게 성인 연주자로 성장한 장영주는 바이올린계를 넘어 문화계를 이끄는 인물이 되었다. 장영주는 2004년에 할리우드볼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2006년에는 《뉴스위크》의 차세대 여성지도자 20인에 선정되고, 2008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청년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미국 대사관의 예술대사(Artistic Ambassador)로 임명되어, 더 이상 귀여운 신동이 아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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