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죽으심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온전히 감당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열두 제자와 함께오르시어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과 함께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신 주님은 그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신 후 그들로부터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거리로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여러 가지의 방법 가운데 예수님 당신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더라도 가능한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해 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십자가에서 당하시는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의 압박이 이와 같이 기도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도의 끝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도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기도에서는같은 말씀으로 한 번 더 기도하심으로 모든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 중에서 예수님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도에서는 ‘만일 내가 이 잔을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즉 첫 번째 기도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시려는 마음이 강조되었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도에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시겠다는 의지가 강조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도에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소극적 의미의 기도가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도에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적극적 결단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 번의 기도 중 첫 번째 기도가 끝났을 때, 누가복음22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예수님께 보내셔서 힘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덧입어 예수님께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쓰다’라는 말은, ‘경쟁’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심한 정신적 투쟁을 나타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음을 전해주는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이러한 긴박하고도 절박한 영적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러한 표현은 엄청난 긴장이 주어졌을 때, 모세 혈관이 파괴되어 피가 땀에 베이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얼마나 절박함과 간절함 속에서 기도하신 것인지 확인하게 해 줍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결국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결단은 기도를 통한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결과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그토록 치열하게 기도하신 후에행하시고자 하신 ‘아버지의 원’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너무도 쉽고 당연하게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거기에서 모든 생각을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쓰고 애써 기도하신 과정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아버지께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향해 어떤 바람을 갖고 계신가? 우리는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끝난 후 군병들에게 체포를 당하셔야 하고, 이후 모진 고통과 고난 속에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 그래서 지금 몹시도 인간으로서 느끼셔야만 하는 큰 두려움에 빠져 계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바람을 갖고 계시겠습니까?
네가 이 땅에 내려간 이유가 바로 지금 십자가에못 박혀 인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냐며 다시금 사명을 주지시키시고 예수님을 강하게 독려했겠습니까? 왜 마음이 흔들리느냐고, 왜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느냐고 예수님을 책망하셨겠습니까?
십자가 앞에 고뇌하는 당신의 아들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위로하시기 위해 당신의 천사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주님께 힘을 더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힘을 더하다’라는 말의 뜻은 ‘튼튼하게 하다’, ‘영혼을 강하게 하다’, ‘격려하여 힘을 돋우어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끝까지 기도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금 천사들을 통해 돕고 계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의미는 곧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당신에게 부여된 십자가의 사명으로 인해 고뇌와 두려움이 더 깊어진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켜보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당신을 돕는 천사들의 손길을 통해 경험하시고 그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아마도 아버지 하나님의 원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처음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고뇌에 빠져 계셨고그 두려움과 고뇌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부여된 십자가의 사명에 대한 진의와 그에 따른 약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잔이 주님에게서 지나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심을 분명히 아시고도 그렇게 기도하셨다는 것은, 사명에 대한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약화되어진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경험한 주님께서는 비로소 당신에게 맡겨진 십자가 사명의 진의를 재확인하시고, 그에 따른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확신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뒤에 있는 진의를 보셨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확인하셨습니다. 십자가만이 영원한 승리의 길이요, 기쁨이 길이신 것을, 당신께서 죽은 뒤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활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을 확신하셨으며, 당신을 높여 모두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기도가 거듭될수록, 기도가 땀에 피가 베일 정도로 더욱 치열해질수록,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더욱 확고해져 결국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당신의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우리들의 최종 목적은 아버지의 원대로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오늘날의 삶은 어떠합니까?
지금까지 많은 경우 아버지의 원대로가 아닌 나의 원대로 살아온 오늘날의 결과물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만족하고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에 기쁨과 은혜와 승리와 능력과 축복이 가득한 그런 삶입니까? 아니면 고민과 번민, 고통과 괴로움, 힘겹고 수고로운 삶으로 점철되어 있습니까?
우리는아주 작고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바람은 단지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절대적 순종으로 지게 하시는 것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참된 승리와 기쁨과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을 믿고, 우리는 기꺼이 예수님처럼 기도를 통한 치열한 영적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끝내 예수님처럼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피조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래야만 우리의 삶을 영원과 진리 위에 세워갈 수가 있습니다.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세 번째 날을 맞은 오늘, 이 기도의 자리가 주님과 같은 치열한 영적 전쟁의 자리가 되어지고, 그런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은혜 속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바람이 곧 나에게 참된 유익을 주는 것임을 확신함으로, 결국 주님과 같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결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