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 골퍼’를 꿈꾸는가
어느 골프연습장에서건 괴기한 스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괴기한 스윙의 주인공 사정을 모르고 섣불리 가르치러 들었다가 싫은 소리 듣고 물러나는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난들 내 스윙이 비정상이란 걸 모르겠느냐. 다 사정이 있으니 참견하지 마라’란 말이 들리는 것 같다.
타이거 우즈나 어니 엘스, 프레드 커플스, 로리 맥길로이 등 힘차면서 아름다운 스윙을 하는 선수들을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GA투어나 LPGA투어 선수들의 스윙이 아니더라도 KLPGA투어나 KPGA투어 선수들의 스윙만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의 스윙은 한결같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연습장을 찾는 누구나 그런 선수들의 스윙을 머릿속에 그리며 땀을 흘린다. 그럼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두고 골프의 불가사의성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프로선수들의 스윙을 모범으로 삼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프로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전문 교습가의 지도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스윙을 익힌다. 뼈가 굳기 전에, 근육에 엉뚱한 쪽으로 습관화되기 전에 이상적인 스윙을 연습한다.
그러나 일반 골퍼들은 사회에 나와 성년이 되어서야 골프를 접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 연습해야 한다. 기본적인 근력운동이나 체계적인 스윙을 익힐 여유도 없이 며칠 만에 당장 써먹어야 하는 스윙을 익힌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프로선수들을 닮은 스윙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과욕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런데 섣불리 가르치러 드니 말이 되겠는가. 자신의 스윙도 교과서적인 스윙과 거리가 먼데 남을 가르치러 덤비니 싫은 소리 들을 수밖에.
1907년 브리티시 오픈에 처녀 출전해 당시 골프의 세 거인이라는 해리 바든, 존 헨리 테일러, 제임스 브레이드를 꺾고 깜짝 우승한 바스크 출신의 알루누 메시는 “골프의 스윙은 자유다. 골프는 과학적인 용구를 가지고 비과학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개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일갈했다.
미국의 프로골퍼 제임스 로버트 허먼(James Robert Herman·47)은 “골프의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같은 것은 없다.(The swing of golf is like a fingerprint, so there is nothing like it.)”고 갈파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골프의 스윙도 사람마다 결코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스윙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스윙마다 같을 수 없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완벽하게 같은 샷은 재현할 수 없다.
아일랜드 골퍼들은 교습서를 멀리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 헨리 B. 패니 라는 한 에든버러의 인쇄소 주인이 쓴 ‘The Golfer's Manual’이란 책에 아일랜드 골퍼들이 교습서를 기피하는 까닭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샷이란 클럽을 올렸다 내리는 것일 뿐, 너무 세세히 신경을 쓰면 전체의 리듬이 파괴되어 진보가 저해된다.”라는 것이 샷에 대한 저자의 정의다. 군더더기와 기교가 완전히 제거된 샷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브리티시 오픈에 지미 킨세라 라는 아일랜드 골퍼가 출전했는데 그의 플레이를 본 타임즈 기자는 “불가사의한 선수도 있다. 그는 전혀 백스윙도 하지 않고 250야드나 날려 보냈다.”고 썼다. 사연인즉 그의 어머니가 집에서라도 스윙 연습을 하라고 채근해 천장이 낮은 지붕 밑 다락방에서 매일 300회 이상 클럽을 휘두르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백스윙 없이도 볼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재를 생각하면 쉽다. 선수들은 분재처럼 키워지고 연습한다. 그런 선수들이라 해도 스윙은 제각각이다. 비슷해 보이기만 할 뿐 신체조건과 성정, 성장환경, 생활 습관, 연습방법, 가르치는 스승에 따라 선수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개성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같은 종의 나무라 해도 기후, 토양, 일조량, 강수량, 양지냐 음지냐, 비탈이나 평지냐, 강변이냐 숲속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
분재가 될 것이냐, 야생의 자유로운 나무가 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