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성탄
성탄을 맞이하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벌써 코로나 19가 3년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뇌졸중에 걸린 지 꼭 9년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이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다시 태어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많이 건강해졌지요?
예수님께서 어디에 탄생하셨습니까? 바로 구유이지요. 구유는 원래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요. 여러분, 냄새나고 지저분한 짐승의 밥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 눕혀진 구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빵은 우리말로 바꾸면 바로 밥이지요. 밥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우리의 밥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에게 ‘너, 나의 밥이야’라고 하면 여러분들, 어떻게 느낍니까? 기분 나쁘지요. 우리 안에서는 즉시 “내가 왜 너의 밥이냐? 네가 나의 밥이지.”라는 반응이 저절로 나오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의 밥이 되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 의미입니다. 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그분처럼 우리가 밥이 되어,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니까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아니, 예수님 때문에 남의 밥이 되기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지, 2022년이 되는 성탄을 맞으면서 에크하르트가 던졌던 물음을 다시 상기해 보자고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정말 이 시대, 이 문화 안에서 우리가 다시 하느님의 아들을 낳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세상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지 못한다면, 또 달리 말해, 우리가 진정 남의 밥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2022년을 맞이하는 성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세상에 사랑을 낳고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은 바로 사랑으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남의 밥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진정 남의 밥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바로 그분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뉴질랜드에 갔을 때, 가장 좋은 일은 아침에 일어나면 새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날이 밝아오면서 새 소리에 잠을 깨게 됩니다. 새 소리는 잊고 있던 책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The Song of the Bird]라는 인도의 예수회 신부님셨던 안토니 드 멜로 신부님의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에 [종교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번역이 되어 소개되었고, 다시 몇 년 후에는 [새 소리가 들리느냐?]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그 책이 사실 제가 40년 전에 번역을 했습니다. 책이 번역되기 몇 년 전이었지요. 혼자 간직했지요. 그 책에서 안토니 드 멜로 신부님은 새 소리에 문득 깨달음을 얻는 선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진정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곳의 어느 신자분 중에 주식에 고수이신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 말씀을 들어보니, 그분이 새 소리를 들으면서 고수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나 봅니다. 그분이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새가 ‘주가는, 주가는’이라고 운답니다. 주식에 온 촉각과 청각마저 집중하면, 새 소리마저 ‘주가는, 주가는’이라고 들릴 정도가 된 것이지요. 그것이 고수의 경지입니다.
이제 성탄을 맞으면서 저는 그분이 주식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영성에서도 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새소리가 ‘주가는, 주가는’이 아니라 ‘주께서, 주께서’라고 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오십니다. 단순히 2000년 전에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마음에 오시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으면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새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새가 ‘주께서, 주께서’라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곳,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새가 뭡니까? 키위이지요. 뉴질랜드를 키위랜드라고도 하지요. ‘키위’는 뉴질랜드 국조(國鳥)라고 들었습니다. 키위는 수컷이 ‘키위키위’ 하고 운다고 해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곳에서 키위를 보았습니다. 그 키위를 보면서 키위가 우는 소리를 들었더니, 저에게는 ‘키위 키위’라고 들리지 않고, ‘키리에, 키리에’라고 들리던데요.
키리에는 여러분들 알다시피 주님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키위가 ‘주님,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하. 키리에는 ‘주님’을 부르는 호칭이지만, 자비송,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의 앞 단어이기 때문에 자비송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이제 키위를 보고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세요.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키위는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지요. 그래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들의 밥이 됩니다. 키위는 특성상 ‘주님’을 닮았나 봅니다. 이제 키위를 보면, 주님을 생각하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성탄 축하 인사드립니다.
첫댓글 제가 밥이 되어 이웃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예' 로 응답함으로써 이웃의 생각과 말에 순종하기,
이는 제 생각을 낮추고 이웃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과 달라도 열린 마음의 침묵으로써 이웃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공감하기,
이는 이웃의 마음을 듣고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부피가 커지고 이웃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이웃을 향해 저의 시각과 청각과 마음을 집중하면
새소리는 키리에, 키리에로 들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류해욱 요셉 신부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생각과 달라도 열린 마음의 침묵으로써 이웃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공감하기,
이는 이웃의 마음을 듣고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부피가 커지고 이웃은 위로를 받음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삶에 참여하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셨는데
성탄 미사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럼 나는 그럼 무엇을
포기할까를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질문의 답으로 새해부터는 그 길로 따르렵니다.
건강해 지셨다니 좋아요.
성탄 축하드립니다.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성탄 축하드리며 영육간에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