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days
2021년 3월 7일 오후,
작은 남새밭을 만들려고 마당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던 중 흙 속에 있던 녹쓴 못 한 개가 튀어서 서툰 농사꾼인 내 왼 손등을 찌르고 튀어 날아갔다.
상처에서 피가 났지만 나는 대충 닦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밤에 샤워를 하려다 내 손등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등이 새까맣게 변해서 이게 무슨 일인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요즈음은 의사보다 인터넷이 먼저라고 우선 인터넷에서 증상을 조회하여 보니 파상풍 초기 증상이 의심된다고 했다.
파상풍이란 어떤 병일까 더 검색해보니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첫째, 파상품은 주사로 예방하는 것 외에 일단 걸리면 나을 수 있는 치료술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고,
둘째, 확진 여부는 대개 3주 안에 결정된다고 하며,
둘째, 만약 파상풍이 맞는다면 그 증세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지독한 면이 있다. 즉, 허리가 밖으로 굽는다. 턱을 움직일 수 없어 저작을 할 수 없다. 등등
셋째, 치료라는 것도 통증에 대한 약간의 완화 외에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밤이 늦었지만 급히 서둘러서 준 종합병원급인 대동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한 의사가 말했다. “우리 병원은 이 병에 대해서는 진단 여부를 할 수 없으니 대학병원에 가보십시오”
다시 양산에 있는 부산대학교 병원에 가서 또 응급실을 찾았다.
야간이라 몇 명의 레지던트, 인턴 급의 의사들이 모여 있었고, 내 손등을 보더니 “파상풍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은 증상 외에는 없습니다. 또 파상풍은 치료 약이 없습니다. 해 드릴 게 없네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에서 제일 고참이란 의사가 ”이왕 오셨으니 백신이나 한 대 놔 드려라“라고 지시하여 겨우 주사를 맞고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이날로부터 나는 21일 동안 파상풍에 걸렸는지 아닌지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안고 지내게 되었다.
의사인 고교동기 이승기 군과 박병렬 군이 자문을 해주고 안심을 시켜주긴 했지만 불안은 점점 눈덩이가 되어갔다.
곰곰이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살아오면서 부딪친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옳고 그름에 기준을 두지 않고 내 이익에 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란 길든 짧든 자신이 이루고자 한 일에 매진하였다면 그 성과를 얻기에 결코 짦지마는 아닌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후회도 들었다.
이제 죽는다는 것은 별로 겁이 나거나 아쉽게 생각되진 않았다. ’나서 살다 죽었다‘. 이것이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비문이다.
그런데 정작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기 전에 해야만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30년 가까이 경영해오던 구멍가게도 정리해야 한다.
자산과 부채를 정산, 정리하기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세무문제도 있거니와 회사 부동산을 매각하는 데도 최소한의 시일이 필요하고 직원들 퇴직도 무난히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핵심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것이다.
아내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최소한 가난에 고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장치를 해두고 가야 하나?
딸들에겐 또 어떻게 해 줘야하나? 특히 미성인 과년한 둘째는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것인고?
밥알을 씹는 것이 모래와 같다고 한 옛말이 이 소심한 늙은이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이렇게 3주, 21일을 보냈다.
22일이 되던 날, 내가 한 일은 저녁에 집에서 술을 독작한 것이다. 아, 살았구나 하는 안도와 그동안 생각했던 나의 온갖 쩨쩨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에 그날 마신 술은 가히 내 평생 가장 진한 술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맑은 정신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작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매듭지어 놓은 일들 하나도 없고, 가족들을 위해 유언장 하나 써둔 것도 없었다. 단지 21일 동안 걱정만 해 온 것이었다.
이처럼 우유부단하고 혼미한 자가 세상에 또 있는가?
이러한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내 덕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관용인지, 또 아니면 조상의 보살핌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아직 나는 살아있다는 것.
첫댓글 아하! 마음 고생이 많았내! 화이팅!
내 생각이지만 이런경우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것일고 생각하네!
어째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나
짐작이 가네!
친구야 살아있어 고맙네!
용궁 갔다 왔구먼.
용궁을 많이 갔다올수록 사람이 커지고 세상살이가 재미있어진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