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 축일
제가 그만 강론을 늦게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지방에 미사를 다녀 왔어요. 오래 전에 쓴 강론이지만 저에게 의미가 있는 강론입니다. 부디 읽고 마음에 새기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내리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우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굳은 맘 풀어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우리가 복음 환호송 전에 부른 부속가인 성령 송가의 일부입니다. 이 송가는 성령이 누구 신지, 어떤 역할을 하시는 분이신 지를 잘 드러내주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위로자이시며 영혼의 생기를 돋아주는 기쁜 손님이시며 한 줄기 빛으로서 우리의 맘 깊은 곳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복음 환호송에서 노래하듯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일본에 북해정이란 우동 집이 있었답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가게를 정리하려는데 한 여인이 여섯 살, 열 살 가량의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저...우동... 1인 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주문을 받은 주인은 1인분에 반을 더 넣어 삶았습니다. 세 사람은 한 그릇의 우동을 서로 이마를 맞댄 채 맛있게 먹었지요. 150엔의 값을 지불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하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목청을 돋워 인사했습니다.
한 해가 지난 다시 섣달 그믐날 밤 10시가 막 지난 시간 두 아이를 데리고 한 여인이 북해정을 들어왔습니다. 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낡은 코트를 보고 1년 전의 그 마지막 손님임을 알아보았지요. 그들은 지난해처럼 우동 한 그릇을 시키고 셋이서 맛있게 먹고 갔습니다.
그 다음해 섣달 그믐날 밤, 주인은 10시가 넘자 벽에 걸려 있는 메뉴 표를 뒤집어서 그해 여름에 200엔으로 올렸던 우동 값을 150엔으로 다시 바꾸어 놓았습니다. 10시 15분 경 세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저...우동...2인분인데도 괜챦겠지요?”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으며 세 모자는 밝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형아야, 그리고 쥰이야. 고맙다.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 부상을 입었었잖니. 보험으로 모자랐던 만큼을 매월 5만 엔씩 지불해왔는데 오늘 전부 끝낼 수 있었단다.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했고 쥰이는 장보기와 매일 저녁 준비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단다.”
그러자 형아가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어요. 지난 11월 쥰이가 쓴 작문이 북해도 대표로 뽑혀 전국 대회에 뽑히게 되어 선생님이 오서 수업을 참관하라는 편지가 왔는데 엄마 대신 제가 갔었어요.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이었는데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 아줌마가 ‘고맙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주신 일. 그 목소리는 ‘힘내라! 지금 어려워도 용기를 잃지 말아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 말이 늘 마음을 울려오면서 커다란 위로가 되었노라고,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그렇게 힘내라는 속마음을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큰 소리로 읽었어요.”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며 맛있게 우동을 먹고 인사하고 나갔습니다.
다시 그믐날 밤이 되자 북해정의 주인은 세 모자를 기다렸으나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해 섣달 그믐밤, 조용히 북해정의 문이 열리더니 정장 차림의 두 청년과 화복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우동 3인분 괜챦겠지요?”
당황해하고 있는 주인에게 청년 중의 하나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15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그 한 그릇의 우동,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주셨던 두분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지만 은행에 취직한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에서 최고의 사치스런 일을 계획했습니다. 오늘 북해정을 찾아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삶의 아름다움, 삶의 잔잔한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셋이서 우동 한 그릇을 시킬 수밖에 없는, 사고로 숨진 남편이 남긴 빚을 갚아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여인, 돈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외식을 시켜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리고 신문 배달, 장보기, 저녁 준비 등으로 어린 나이에도 고통을 함께 나누는 두 형제의 모습과 우동집 내외가 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우동 국물만큼이나 따뜻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영세를 한 그리스도인들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이들 안에는 성령이 머물러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동집 내외가 소리를 높여 “고맙습니다.”라고 외쳐 주어 세 모자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던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사람들 안에 머무시면서 하시는 일입니다. 한 줄기 햇살처럼 우리에게 오셔서 위로를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오늘 제1 독서 사도 행전을 보면 성령께서는 불의 모습으로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불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타오르게 하는 불이십니다. 어두움을 비추며 찬 마음 데우시고 굳은 마음 풀어 주시는 불길이십니다.
또한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바람이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이며 생명의 숨결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의 숨결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이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성령은 세찬 힘이었습니다. 두려워서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 힘은 바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이요 사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은 바로 남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힘입니다. 한 그릇의 우동이, 한 마디의 말이 용기를 주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거기 머무시면서 주신 힘입니다.
제가 오래 전 성령 강림 대 축일에 썼던 시를 들려 드리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님의 사랑
님의 사랑은
한줄기 바람.
색깔도 내음도 향기도
소리마저 없는 바람이어라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손에 잡을 수 없다고 하여
그대 바람이 없다고 하는가
바람의 본성은
자유
언제나 숨쉴 수 있는 공기와 같은 것
그대는 알게 되지
그대가 자유를 숨쉬는 순간
님의 사랑이 그대의 영혼을 흔드는 것을.
바람은 물과 같은 것
머물지 않고 끝없이 흐르나니
바람이 그대에게 자유를 주게 되면
그대 바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
풀잎을 매만지며 나뭇가지를 흔들며
님의 사랑은
그렇게 와서 마음의 파문을 일으키고
사랑이라고 부르는 빗줄기 속으로
그대와 나를 던져놓는다.
그대
두 손을 모아 빗물을 받아보아라
빗물에 담긴
파도소리를 듣는가 바람소리를 듣는가.
첫댓글 아멘 ()
따뜻한, 북해정 주인의 마음에,
제 마음도 훈훈해요. 성령강림대축일,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종일 비가내렸지만,
성령하느님의 사랑안에 머문
복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이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용서 받은 자의 이익을 대변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용서를 한 자를 정말로 아끼시는 사랑과 은총의 말씀이라 묵상합니다
돌 같이 굳어진 미움으로 인한 어둠과 죽음에서 벗어나,
빛과 생명으로 나아 가게 하시고, 그 순간 자유를 숨 쉬게 하시어
영혼을 흔드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이해함으로써 용서하게 하시고
용서함으로써 결국은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의 세찬 힘이시라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