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자, 불일암
- 법정 스님이 머물다 가니 바람마저 길을 떠나다.
무소유(無所有)
"아무것도 갖지 않은 궁색한 빈털터리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홀가분한 사람이다. 넘치는 부富보다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이 지혜로운 삶이다."
암자가는 길은 늘 조심스럽다. 바람 한 자락에 법문 한 구절 들으면 그만인데,
범인의 소유욕은 그렇지 않다. 생수 한 병도 거추장 스럽다는걸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불일암 가는 길은 삼색의 세계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처럼 말이다. 처음의 길은 솔숲 아래 켜켜이 쌓인 낙엽길이다.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아름드리 측백나무가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 'ㅂ~'의 표목을 따라 꼬마 나무다리를 건너면 이른 새벽에 스님이 빗질을 한 불일암의 영역이다.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 듯 마지막 안내자는 대나무이다.
터널같은 대나무숲 사이의 오솔길은 스님의 땀이 곳곳에 배여 있다.
돌계단과 흙으로 다진 흙계단, 빗질마저 아름다운 어두운 대숲을 지나면 밝은 빛이 암자마당을 비추고 있다.
불일암佛日庵은 법정 스님이 1970년대 조계산 자락에 지은 암자이다.
사실 암자가 처음 들어선 것은 고려시대 때 였다고 하나 오늘날의 암자 모습을 갖춘 것은 순전히 법정 스님의 땀의 결과이다.
암자에 들어서니 인적 하나 없다. 이따금 대숲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가지 사이로 한 번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전부이다.
아니 바람도 이미 떠나고 미처 발길을 돌리지 못한 바람만이 머무는가 보다.
법정 스님이 이곳에 계실 때 찾는 이가 많아지자 아예 강원도 두메 산골의 화전민이 사는 곳으로 수도처를 옮기지 않았던가.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이 머물던 암자에는 최소한의 것들 밖에 없다.
법당 하나, 우물 둘, 몸을 씻는 움막 하나, 선방인 하사당, 장작더미, 지게 하나,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의자 하나, 해우소 하나, 바람 한자락이 전부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법당 벽에 걸린 글귀에서 암자의 체취를 느낀다.
하사당으로 내려 오니 스님 한 분이 마루에 걸터 앉아 무언가를 꺼내고 있다. 깊은 합장을 하였다.
"점심 공양은 하셨습니까?"
" 아직 못했습니다. 산을 내려가서 할 생각입니다."
" 배가 많이 고프시겠습니다."
시계를 얼핏 보니 오후 두시가 넘었다.
덕현 스님에게 암자에 관해 이리저리 이야기를 들었다.
박스 안의 물건을 푸시던 스님이 법구경 한권을 건네신다.
"아니, 저는 드릴 게 없는데...."
" 그냥 가지세요"
이윽고 다른 물건을 푸시더니 달력 하나를 덤으로 주신다.
" 길상사 아시죠. 길상사에서 달력을 보냈네요. 박스에 떡집으로 되어 있어 떡인 줄 알았더니만. 허허"
"저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네요. 다음에 올 때는 무겁게 오겠습니다."
하사당
원래는 법당 건물이었으나 법정 스님이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전의 건물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것이 하사당이라고 한다.
"암자가 정말 정갈합니다."
"법정 스님이 깔끔하신 분이라 그러하지요. 그 뒤의 스님들도 깨끗하게 유지할려고 애쓰고 있지요."
덕현 스님과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보각 스님이 지게에 장작 한 짐를 지고 절마당에 들어선다.
"천천히 둘러 보시고 가십시요."
빗자루 등을 챙기더니 스님 두 분이 길을 떠나신다. 서로 농기구를 들겠다며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이 아름답다.
보각 스님은 오솔길에서 빗질을 하고 덕현 스님은 돌계단을 손보신다.
목욕을 하는 움막, 해우소, 농기구 창고, 우물(시계 방향)
암자가 정갈하여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가 보다. 법정 스님의 발자취가 아름답고 뒤를 이은 스님들의 정성이 아름답다.
암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사실 망설이게 된다.
번잡한 절집을 벗어나 수도를 위한 곳이 암자인데, 불청객이 혹여 수도를 방해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암자 가는 길을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절한 자는 길을 몰라도 길을 찾게 되는 법이다.
덕현 스님과 보각 스님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가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느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덕현 스님이 준 법구경과 달력 한 권을 가지고 산문을 나섰다.
첫댓글 그분은 떠나셨지만
그분의 향기가 엿보여
여전히
많은분이 찾으시는 곳이지요
다녀온 듯
어느분이실지
세세히
잘 담아오셨네요
저도 다시 서고픈 곳으로
마음속에 메모 합니다
불일암 오르는 길은
왠지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바람결 조차도
그런듯 그랬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앞의 대나무가 길상사와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