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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8] _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가기
220916(금요심야)
요 16:7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가기
우리는 지금 매주 금요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관한 말씀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 “두 종류의 가족”이란 주제로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가족과 마귀 사탄의 가족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고, 두 번째 시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은 금생과 내생 범사에 유익하다.”, 세 번째 시간에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 네 번째 시간에 “새로운 피조물”, 다섯 번째 시간에 “의의 선물”, 여섯 번째 시간에 “영적성장의 기초 7단계(①과거를 잊어버리기, ②용서, ③기도, ④믿음, ⑤예배, ⑥심고 거두기, ⑦전도)”, 일곱 번째 시간에 “생명과 건강을 위한 삶의 근본원리”라는 주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여덟 번째 시간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가기”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16:7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과 늘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고, 문제들을 상담해 주셨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앞두신 어느 한 날은 예수님께서 2-3시간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진지한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1-16:33까지의 긴 말씀을 들려주신 후 요한복음 17:1-26에서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이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가신다고 하니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16:7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이 영어 확대번역 성경인 Amplified Bible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오직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좋은, 도움이 되는, 유리한) 것이라. 만약 내가 너희를 떠나가지 아니한다면, 격려자 (상담자, 돕는 자, 변호자, 중보자, 힘을 주는 자, 대기자,Standby)가 [너희와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하여] 오지 아니하실 것이요, 그러나 만일 내가 떠나가면, [너희와 친밀한 교제를 하도록]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However, I am telling you nothing but the truth when I say it is profitable (good, expedient, advantageous) for you that I go away, Because if I do not go away, the Comforter (Counselor, Helper, Advocate, Intercessor, Strengthener, Standby) will not come to you [into close fellowship with you]; but if I go away, I will send Him to you [to be in close fellowship with you].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 예수님을 대신하도록 보내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해 주시는 분이신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인데 확대번역에서 그 의미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놓은 것입니다. 확대번역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그 성령님을 어떻게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분(Helper)이십니다.
우리가 생활하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하고, 또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주님의 종인 목회자를 의지해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주님의 종인 목회자를 통하여 신앙지도 받기를 즐겨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에 교회에 목회자는 더 이상 필요 없고 서로서로를 세워주면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행 20:28)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들인 장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교회)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목회자들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양무리인 교회의 성도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라고 세우신 성령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의지하되 성령님의 사람인 목회자를 통하여 영적인 분별의 확증을 하시는 것도 지혜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를 속이려는 것은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속이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행 5:1-1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행 2:40-42) 『[40] (베드로가)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행 6:3-6)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살전 5:12-13)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벧전 5:5-6)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목회자)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목회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계 2:1-3:22)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지도자=목회자)에게 편지하라...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엡 4:11-12)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이상의 말씀들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 목회자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지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가능한 한 주의 목회자들을 통하여 신앙의 지도를 받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 단,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는 이 말씀처럼 항상 성경을 통하여, 문맥에 입각한 성경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확증하며 나아가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것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가능한 주의 종 목회자를 통하여 신앙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늘 언제나 성도들 가까이에 있지는 못하게 됩니다. 그럴 때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늘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우리 곁에 계시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순간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상담자(Counselor)이십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이 있거나,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상담할 수 있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항상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께 상담을 드리면 평안함 가운데 인도해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주시기 때문입니다(빌4:6-7).
셋째로 성령님은 우리의 변호자(Advocate)이십니다.
우리의 편에 서셔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변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 편에 서셔서 우리의 소송사건들에 대하여 변호해 주시는 최고의 변호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를 때에는 성령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성령님은 우리의 중보자(Intercessor)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우리의 연약함에 함께 대항하여 붙잡으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성령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고 도와달라고 말씀드리면,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시는 분(Strengthener)이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우리와 늘 함께 우리 안에 늘 거주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으로부터 전능하신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또 다른 능력을 사모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능력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로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늘 대기하시는 분(Standby)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것을 기다리시며 항상 대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령님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서서 대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약 4:5, 개정)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약 4:5, 현대인) 『하나님이 우리 속에 살게 하신 성령님은 우리를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하찮은 말로 생각하십니까?』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대기중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성령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만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듯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증상이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도 염려하고 기도하면서도 염려하고 기도한 후에도 염려하는 이유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지식을 성령님보다 더 의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입니다.
(갈 3:3, 개정)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 3:3, 현대인)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여러분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여러분 자신의 노력으로 완전해지려고 하십니까?』
우리는 늘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상담해 주시고, 변호해 주시며, 중보자로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우리에게 힘을 북돋우어 주시고, 늘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대기하고 계신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때에 모든 상황으로부터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주제와 연관된 케네스 E. 해긴 목사님의 글을 소개해봅니다.
여러 해 전에 한 여성이 그녀 안에 계시는 성령께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면서 어느 이른 아침에 우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그녀는 당뇨병과 몸의 종양에서 치유를 받았었습니다. 내가 그녀의 언니 편에 기도의 수건을 보내 드렸던 것입니다. 그녀의 언니는 내가 목회하던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 여성은 기도를 받으러 우리 사택으로 온 것입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면, 그녀가 재발하였는데, 만일 자기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기는 살든지 죽든지 상관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나는 그녀가 어떤 끔찍한 죄를 지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다 용서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자기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 때문에 승리를 잃어버렸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자기는 승리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여성에게 무슨 죄나 잘못이 없었고, 다만 그녀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느낌으로 행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기를, 만일 내가 항상 나의 느낌에 따라 산다면 내가 설교하러 강단에 설 때 회중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신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의 구원은 느낌과 감정에 근거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 여자는 놀라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니까 목사님들도 때로는 그런 느낌이 드신다는 거죠?”
내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랍니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영적으로 메마름을 느낄 때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거기 앉아서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세요.”라고 내가 대답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거듭났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이르기를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친자녀이고 하나님은 나의 친아버지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안에 내주해 계심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 기름부음이 내 안에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름부음이 내 안에 있으니 나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쯤 해서 내 속에서 나는 내 속에 거하시는 더 크신 분의 임재하심에서 오는 뜨거운 불과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무언가가 부글부글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을 느꼈습니다. 내 영 안에서 성령의 불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표현 자체가 달라졌고 목사님이 말씀을 하실 때 얼굴이 환하게 빛났어요!”
내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내가 주님께 말할 때는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말고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내가 한 것과 똑같이 했는데, 그러고 나자 웃음을 터뜨리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감탄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속에 그 기쁨이 계속 있었어요! 다만 그걸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에요!”
많은 성도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 안에 승리가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들 안에 있는 그 기름부음을 불러일으키기만 하면 되는데, 그들은 느낌과 감정으로 행하고 육신적으로 그들의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 기름부음, 곧 성령님이 항상 계셔서 당신의 기도를 도우시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당신을 도와주십니다.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그가 당신 안에 거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어떤 사람은 아직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을 느끼지 못해요.”
성령님은 당신이 그분의 임재를 느낄 때나 느끼지 못할 때나 똑같이 당신 안에 계십니다. 만일 성령님께서 오셨다가 가 버리신다면 그분은 당신 안에 거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당신은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성령님이 거하고 계심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당신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1:6)
바울이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 듯 하게 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무엇을 말한 것이었습니까? 그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6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가 안수함을 통하여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spirit)" 곧 성령이라고 말합니다.(딤후1:7)
(딤후 1:6-7)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이 구절들을 고린도전서 6:19과 연결시켜 보세요. 거기서는 우리 몸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1:6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은사는 곧 성령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분명해집니다.
요한일서 2:27에서 사도 요한이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기름부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성령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를 위로자, 상담자(카운슬러), 돕는 자, 변호사, 중보자, 강화자(힘을 돋우어 주는 자) 및 대기자로 부르셨습니다.
불은 성령님의 상징입니다(눅3:16, 행2:3~4) 당신 속에 있는 그 불을 다시 불타게 하십시오. 당신 안에 있는 그 기름 부으심으로 활성화시키세요.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기를 “열심을 품으라”(영에서 활활 불타라)고 말했습니다(롬12:11) 모팻 역에서는 “영적인 열심을 유지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속에 성령의 불과 기름 부음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열심을 유지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타다 남은 불과 성령님의 내적인 불을 다시 불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12:11의 확대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열심과 진지한 노력(시도)에 있어서 결코 꾸물거리지 말라. 성령으로 뜨거워지고 활활 타올라서 주를 섬겨라.”
Never lag in zeal and in earnest endeavor; be aglow and burning with the Spirit, serving the Lord.
성령님은 불입니다. 성령님으로 불타고 성령님으로 불붙으십시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기도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나요?
우리가 속에 간직한 불을 다시 불 일듯 하게 하려면 성령 안에서 기도함을 통하여 되어집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서 그 열심과 열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의 위로자, 상담자(카운슬러), 돕는 자. 변호사, 중보자, 힘을 돋우어 주시는 분(강화자) 및 대기자가 되십니다! 신약의 말씀은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말합니다(요14:17, 23). 우리는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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