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지워지지 않는 집 ●지은이_김윤한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1. 10. 7
●전체페이지_144쪽 ●ISBN 979-11-91914-03-0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지워지지 않는 집을 찾아가는 삶의 시집
김윤한 시인의 네 번째 신작시집 『지워지지 않는 집』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김윤한 시인은 1995년 등단하고 지금까지 문학적 열정으로 시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부단히 창작 활동을 해 왔다. 이번 시집에는 시간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돋보인다. 돈, 넥타이, 소주병, 가족사진 등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적 삶과 그 삶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이야기적 배경들이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고 경험적 시간이 시적 정서를 이끌고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간은 빠르게 과거로 도망친다
액자 속에는
흘러간 시간의 한 토막이 들어 있다
사진은 어둠을 찍지 못한다
아련한 사연들은
빛에 가려 보이지 않고
사진 속에서는 모두들
어색하게 웃고 있다
시간은 재재거리며 흘러가지만
액자 속 시간은 멈춰 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아득한 과거로 남는다
사진은 나이를 먹지 않지만
가족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주 아프다
마침내 누군가는 모든 것 남기고
먼저 떠나가리라
사람은 떠나고 그림자만
빛바랜 채 액자 속에 남아서
더욱 쓰리고 아프리라
―「가족사진」 전문
오래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을 통해 흘러간 시간에 대한 심회를 풀어내고 있다. “사진은 나이를 먹지 않지만/가족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주 아프다”, “사람은 떠나고 그림자만/빛바랜 채 액자 속에 남아서”「가족사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구체적 매개물이다. 시간은 필연적으로 흐른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 ‘가족사진’을 통해 상징화되고 있다. 나아가 한 생애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 독자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일상적 소재로 일깨워준다.
누구나 달 하나씩은 갖고 있다/태어나던 날, 뚫린 창호지 사이로 들어와 가만히 나를 비추던 그 하현달/어릴 적 새벽, 자다 깨어 거름더미에 오줌 갈기고 쾌감에 부르르 몸 떨 때면/그 위에 은빛으로 부서지는 달빛/홀로 밤길을 걷는 것은 무서웠다/그럴 때면 외로운 달, 천천히 내 보폭에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발걸음 멈추고 올려다보면/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발걸음 멈추고 느티나무 가지 사이에 숨어 시치미떼곤 했다/젊은 날, 우울의 강은 넓고 깊었다/그럴 때면 가만히 나를 쓰다듬던 손길, 가슴속에 달 하나 키우며 그렇게 시절을 보냈다/너무 멀리 왔구나 낯선 나라/어김없이 그곳까지 따라와 친근한 표정으로 내 그림자를 만들어주곤 하던 나만의 달/오늘은 그믐, 비록 달은 뜨지 않았지만/달거리가 그친 것은 자궁 속에 또 하나의 달을 잉태했기 때문/어느덧 다시 자라나는 초승달 하나, 아무리 해도 달의 중력을 벗어날 수는 없다/나는 달의 자식이었다
―「달의 행적」 전문
‘가족’과 주변 풍경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시인의 사유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외적으로 향해 있던 시인의 시선이 ‘나’와 관련된 내적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보다 혹독한 자기 성찰을 보여준다. ‘달’의 이동 경로 ‘하현달’에서 ‘그믐’, ‘초승달’까지는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긴 시간적 거리를 담고 있다. 시인의 시간은 ‘어릴 적’, ‘젊은 날’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그래서 한 편의 긴 이야기같다.
김윤한 시인의 시적 공간에는 사람이 있고, 사연이 있고, 정겨운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이 있다. 시인은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삭을 줍듯, 하나하나 ‘나’를 찾아 나선다. 시인의 시적 거리를 따라 걸으면 순간마다 놓인 사람과 사연과 풍경들, 한때 꿈과 열정의 이름으로 채색되던 소리의 파장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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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젖은 돈·13
달의 행적·14
손금·16
씀바귀 김치·18
나방을 위한 변명·20
낙타 무늬 넥타이·22
숨은그림찾기·24
휴지통 비우기·26
소주병 속의 새·28
신발장·30
까치 생각·32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관한 소고·34
백열등의 시간·36
제2부
눈물·41
자전거는 후진이 되지 않는다·42
과거형에 대하여·44
라면을 끓이며·46
선데이서울·48
옷을 버리며·50
서울소리사·52
자석 놀이·54
지네·56
알츠하이머·58
아픈 날·60
평화고물상·62
제3부
검객·67
지워지지 않는 집·68
가족사진·70
50원·72
지퍼·74
A씨·76
술적한 날·78
과묵한 우체통·80
수몰·82
사랑니·84
혀·85
넥타이·86
귓속의 안부·88
옹이·90
제4부
화살표·93
오래된 손수건·94
아카시아 파마·96
그렁그렁·98
마우스를 버리며·100
구두를 사다·102
벙어리장갑·104
제일라사·106
숨바꼭질 ·108
공중전화가 있던 자리·110
호루라기·112
구덩이를 파다가·114
미역국·116
해설│김성조·117
■ 시집 속의 시 한 편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지만 제대로 재생되지 않고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안갯속 저만치서 낡은 시간을 가만가만 불러오는
낡고 오래된 집 한 채 있다
까치들이 아침마다 울어댔지만 뒤란에는 언제나 그늘이 들었고
습지식물들이 자꾸 돋아났다
주기적으로 누군가 아프곤 했다
댓돌 위에는 저마다의 발바닥이 담긴 고무신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조금씩 모자랐다
가난을 말리며 빨래들이 펄럭였다
아침저녁 하늘로 부지런히 연기를 피워 올렸지만
오히려 부엌에는 그을음만 더 짙어질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떠나오고 그 집도 아득한 곳으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지겹도록 많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어릴 적에는 그 집안에서 우리가 살았지만 이제는 내 안에 아련한 집 한 채 살고 있다
아무리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집」 전문
■ 시인의 말
세 번째 시집 이후 5년 만에 다시 시집을 낸다
시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속 시원히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한 권의 가당찮은 시집이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부질없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이 죽은 듯이 지내고 있는 내게 안부처럼 시집을 보내주었고 늘 고맙게 받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여전히 죽지 않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신호이기도 하고 염치없이 공짜로 받아 읽은 시집들에 대한 부끄러운 답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변찮은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를 드린다
2021년 가을
김윤한
■ 표4(약평)
김윤한 시인은 우리의 삶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간 의식의 건전한 변화와 삶의 목적을 인지시키기 위하여 시를 쓴다. 불통의 난해한 시의 잡초가 널려 있는 밭에 김윤한 시인의 시는 노란 장다리꽃 같은 느낌을 준다. 김윤한 시인의 시에 드러난 서사나 묘사는 독자의 눈을 끝까지 사로잡는다. 몽환 속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일깨울 뿐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을 좇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질책한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사라진 추억을 꺼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도 누군가 울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리는 과정이”라고 김윤한 시인은 나직하면서도 따뜻한 위안을 전하고 있다._강상기(시인)
김윤한 시인의 시적 공간에는 “낡고 오래된 집 한 채”의 ‘그늘’과 그리움이 있다. 사람이 있고, 사연이 있고, 정겨운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이 있다. ‘시간’은 ‘어릴 적’, ‘젊은 날’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그래서 한 편의 긴 이야기처럼 굴곡진 역사성을 함유한다. 지난 걸음들의 갈피마다 놓인 사람과 사연과 풍경들을 열어보면, 한때 꿈과 열정의 이름으로 채색되던 소리들의 파장이 반짝인다. 시인은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삭을 줍듯, 하나하나 ‘나’를 찾아 나선다. 떠남과 이별, ‘빈자리’의 공백이 투명하다. 도처에 ‘꿈’을 억압하고 날개를 구속하던 ‘고삐’의 ‘시간’이 손에 잡힌다. ‘빛’은 찰나를 스쳐가지만 황홀을 던져주기도 한다. 따라서 ‘새’의 비상과 날개의 ‘자유’를 추동하는 ‘수직’의 ‘추락’은 뜨겁게 지속될 것이다._김성조(시인·문학평론가)
■ 김윤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세느 강 시대』, 『무용총 벽화를 보며』, 『무지개 세탁소』. 산문집 『6070 이야기』, 콩트집 『3호차 33호석』이 있다. 2011년 자유문학상, 2018년 한국시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현재 『글밭』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첫댓글 김윤한 시인의 네 번째 신작시집 『지워지지 않는 집』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