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년 전 10월 26일!
나는 그날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한국 학생을 대표하여 한국에서 온 서석준 상공부장관을 안내하면서 서 장관이 발표하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 관한 경제학과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미나 진행 중 나는 카메라를 가지러 잠시 아파트에 들려 우연히 TV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크게 놀라서 즉시 워싱톤 대사관에 전화로 확인하고 서 장관에게 보고하여 급히 귀국하도록 주선해 드렸다. 세미나는 한국 경제가 어떻게 년 12% 이상의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배경과 경과에 관한 서 장관의 발표와 토의로 진행 되었는데 지도자의 리더쉽이 중요한 요소였다고 결론 내린 직후였기에 대통령의 유고는 참석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난으로부터 우리민족을 구한 지도자로, 우리민족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분이라고 마음속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35 년이 지난 지금도 평가가 분분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최근 들어 오히려 외국 학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일부 진보 학자들도 경제 발전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우선순위와 공존 가능성 여부는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일단 누가 뭐라해도 당시 우리 민족의 가난을 벗게 한 위대한 공적은 인정해야 할 것으로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3월, 청와대에서 3군 사관학교 졸업 수상자들과 오찬을 같이할 때였다. 당시 정래혁 국방부장관,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이때 대통령의 범접할 수 없는 눈빛과 강렬한 의지, 육영수 여사의 자상하고 단아했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청와대로 가는 버스 속에서 육사 교장이 나 보고 자기가 신호하면 대통령 각하께 건배를 하라고 해서 오찬 시작 전 까지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마침내 일어나서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내외분, 이렇게 오찬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토방위는 저희들에게 맡겨주시고 오로지 대통령 각하 내외분께서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제가 건배를 제의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만수무강을 위하여!" 라고 하고 나니 그제야 밥 맛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 졌다. 식사 중에 육 여사가 서종철 참모총장에게 "서 장군님은 체격이 크셔서 많이 드셔야 겠습니다" 하니, 서 총장이 밥주발을 들어 보이면서 "예, 다 먹었습니다"고 해서 그 모습에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다. 나는 이 날 한식 메뉴에 두 분이 서명하여 주신 것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두 번째 만남은 졸업식장에서 대통령께서 나에게 직접 메달을 목에 걸어 주시고 잘 하라고 격려해 주신 때였다. 이 날 사열대에 어머님과 큰 형님이 가족 대표로 바로 대통령 뒤에 앉으셨는데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 까지도 그 일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 뒤 1974년 여름, 육 여사의 서거 역시 미국에서 TV 뉴스를 통해 보게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10.26, 12.12, 5.18, 6.29 등 중요한 역사의 순간 마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뉴스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가슴조린 일이 많았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충격적인 상황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고, 국가와 사회가 안정적이면서 민주적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보수, 진보, 이념, 실용 등 추상적인 말싸움 보다는 세계화 시대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5,000년 민족 역사가 기리기리 지속되도록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10.26을 맞아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삼가 위대하신 내외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