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후육곡(後六曲)
이황
<1연>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琓樂齋) 소쇄(瀟灑)한데
만권(萬卷) 생애(生涯)로 낙사(樂事) ㅣ 무궁(無窮)하얘라.
이 듕에 왕래(往來) 풍류(風流)를 닐러 므슴할고
<2연>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야도 농자(聾者)는 몯 듣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야도 고자(瞽者)는 몯 보나니
우리는 이목(耳目) 총명(聰明) 남자(男子)로 농고(聾瞽)같디 마로리
<3연>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고인(古人) 몯 뵈
고인(古人)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픠 잇네
녀던 길 알픠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4연>
당시(當時)예 녀든 길흘 몃 해를 바려 두고
어듸가 단니다가 이제야 돌아온고
이제나 돌아오나니 년듸 마음 마로리
<5연>
청산(靑山)은 엇디하여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디하여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 호리라
<6연>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몯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니 어렵거낫 듕에 늙는 줄을 몰래라
♣어구풀이
<1연>
-천운대(天雲臺) : 도산서원(陶山書院) 근처에 있는 경치 좋은 곳. 도산십팔절(陶山十八絶)중 의 하나.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의 약칭.
-완락재(琓樂齋) : 이황이 도산에서 공부하던 서재의 이름. 도산십팔절 중의 하나.
-소쇄(瀟灑) : 기운이 맑고 깨끗함.
-만권생애(萬卷生涯) : 많은 책을 읽으며 학문하는 생활.
-낙사(樂事) : 즐거운 일.
-왕래풍류(往來風流) : 왔다 갔다 하는 풍류. 산책하는 멋.
<2연>
-뇌정(雷霆) : 우레 소리.
-농자(聾者) : 귀머거리.
-백일(白日) : 밝은 해
-고자(瞽者) : 봉사, 장님
-이목총명(耳目聰明) : 귀도 밝고 눈도 밝음.
<3연>
-고인(古人) : 옛 사람. 옛날의 성현(聖賢)
-몯 뵈 : 못 뵈도다.
-녀던 길 : 가던 길, 행하던 도리.
-아니 녀고 : 아니 행하고, 행하지 않고
엇덜고 : 어찌할 것인가
<4연>
-당시(當時) : 그 때.
-녀든 길흘 : 행하던 길을, 곧 학문 수양의 길을.
-단니다가 : 다니다가
-년듸 : 다른 곳에
<5연>
-엇디하여 : 어찌하여
-만고(萬古) : 오랜 세월
-긋디 : 그치지
-아니는고 : 아니하는가
-만고상청(萬古常靑) :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이 푸르름.
<6연>
-우부(愚夫) : 어리석은 사람.
-긔 : 그것이
♣해설
<1연>
초장 : 천운대를 돌아 들어산 완락재는 기운이 맑고 깨끗한 곳인데
중장 : 거기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생활의 즐거움이 끝이 없구나
종장 : 이런 중에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흥취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2연>
초장 : 우뢰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게 나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중장 :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솟아도 눈먼 사람(소경)은 볼 수 가 없는 것이다.
종장 :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사람이 되어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3연>
초장 :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그분들을 못 보네
중장 : 하지만 그 분들이 행하던 길은 지금도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종장 ; 이렇듯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그를 따르지 않고 어찌할 것인가?
<4연>
초장 : 그 대 뜻을 세우고 학문과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 두고
중장 :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오는 것인가?
종장 :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시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엤날에 하던 학문 수양에
힘써라.
<5연>
초장 : 푸른 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며
중장 :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인가?
종장 : 우리도 그것을 본받아 오랫동안 계속해서 푸르게 살리라.
<6연>
초장 : 어리석은 사람도 알고서 행하니 얼마나 쉬운가?
중장 : 훌륭한 성인들도 다하지 못하니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종장 : 쉽든 어렵든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가운데 늙는 줄을 모르겠구나.
♣전체감상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중 후6곡은 ‘언학(言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학문과 수양에 임하는 심지(心志)를
노래한 것이다.
-1연은 책을 읽는 즐거움과 틈틈이 생기는 여가를 이용해 산책하는 여유있는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2연은 학문의 중요성을 노래한 것으로, 아무리 훌륭한 진리하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 성현의 도에 귀먹고 눈먼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문 수양에 힘쓰자는 것이다.
-3연은 옛 성현들이 행하던 도리를 이어 받아 우리 역시 실천해야 함을 주장한 내용으로, 연쇄법을 사용하여
표현의 효과를 살리고 있다.
-4연은 젊었을 때 품었던 학문에 대한 웅지를 소홀히 하고 벼슬길에 올랐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이제라도 학문 수행에 전념할 것을 다짐한 내용이다.
-5연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의지와 끊임없는 학문 수행으로 우리도 옛 성현과 같이 후세에 이름을 남겨
만고상청하자는 내용이다.
-6연은 결사(結詞)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지은이의 대학자더운 풍모를 엿보게 하는 노래이다. 학문이란
어떤 사람도 할 수 있는 쉬운것인 동시에 무한히 심오하여 아무리 연구하여도 끝이 없는 것이기도 하니,
그저 꾸준히 닦을 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학문에 임하는 지은이의 정신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작가소개
이황(李滉, 1501~1570) :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조선 연산군~선조 때의 문신. 학자.
1534년 식년시(式年試)에 급제, 대사성(大司成), 대제학, 좌찬성 등 벼슬을 지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스스로 도옹(陶翁)이라 칭하묘 학문을 닦고 후배 교육에 힘썼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사상의 핵심으로 했다.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기대승(奇大升)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4·7분 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고,
그의 학풍은 뒤에 그의 이원론을 반박하고 나선 이이의 기호학파에 대해서 영남학파를 이루어 당쟁의
대립과도 관련이 되었다.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사액을 내리게 하여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하였으며,
붕당의 폐해를 상소하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현실 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적 태도에 충실하였다. 저서에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퇴계집(退溪集)」,
「성학십도(聖學十圖)」 등이 있으며, 시조에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