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책만드는집,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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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극작가인 브레히트Brecht가 고안한 연극 수법으로,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선입관을 배제하고 그것을 습관적 인식과는 다른 ‘무엇’으로 드러내는 ‘이화효과’가 박진형의 여러 작품에 드러난다. 지각의 쇄신을 꾀하는 예술적 수단으로 현상의 본질을 인식해 내는 한 글자 제목은 상황의 변혁을 촉진하면서도 정형의 틀 안에서 현실을 아우르는 힘이 있다.
“세상은 당신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헐歇」과 “뒤숭숭한 울화통을 온몸 가득 채운” 「통桶」 과 “허물어진 뿔 뒤에 월계관이 기다”리는 「녹」을 건너 “쪽빛으로 변한 바다는 가을이 다가올 징후”라고 읽어낸 시인 박진형의 「늧」을 가늠해 본다.
그의 〈국제신문〉 등단작 「페디큐어」는 슬픔과 상처에 닿아있지만 감상의 뿌리를 거느리지 않는 생생한 발화가 돋보인다. 체험의 구체성을 받쳐주는 사유의 도약과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솜씨가 미더운데, 울지 않기 위해 발끝부터 타오르는 “바닥꽃”의 울림이 그것이다.
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가공된 정서가 아니라 진정성임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웃뜨르’, ‘비그이’, ‘쥐코밥상’처럼 토속어를 잘 앉혀낸 것도 늡늡한 그의 장점이다.
수월하게 전개되면서도 삶의 의미를 심화해 낸 「모과를 읽는 시간」 「익지 않은 설움이 봄 그늘 아래 빛날 때」 「필사적 낙화」 「추잉 껌에 관한 보고서」 「손잡이 평전」을 비롯한 전반적인 시편들이 참신한 정서적 환기와 내면 탐구력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시조가 지향해야 할 양면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_이승은 시인,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고문
■ 차례
시인의 말
1부 동백꽃 든 여인을 사랑하는 법
동백꽃 든 여인을 사랑하는 법 /무릇 /브로콜리 열반 /파프리카 /5월 꽃자리 /귤꽃, 단 한 번의 사랑 /제주 동백 /양파의 사랑법 /모과를 읽는 시간 /피스타치오의 독백 /오후의 장미 묵주 /배롱나무의 배후 /필사적 낙화 /무릇꽃 /볼우물 /칼리마 이나쿠스 /신성한 숲
2부 4월을 위한 레퀴엠
목어 /서리꽃 /정오의 바다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4월을 위한 레퀴엠 /섬, 허공에 뿌리를 내리다 /풍경이 되고 싶은 날의 발라드 /녹 /늧 /익지 않은 설움이 봄 그늘 아래 빛날 때 /동두천 블루스 /헐 /목류 /당신을 바라보는 안경의 방식 /몽당연필 심법 /플라스틱 중독 /견자 묵시록
3부 페디큐어
페디큐어 /스프레이 꽃 /희망 사육 /두더지증후군 /침시 /비그이 /안개 시장 /쥐코밥상 /곤드레 바다 /제비가 있는 저녁 풍경 /어머니와 계란달 /사진이 말을 걸 때 /어머니 여래 /추잉 껌에 관한 보고서 /수저의 자리 /마네킹 토르소
4부 다비
멸치 적멸 /등대의 독백 /태양은 그녀를 위해 뜬다 /손잡이 평전 /물고기자리 /웃뜨르 비익조 /통 /러시안 블루 /오이도 /아나키스트 여행 /비행운에 감춰진 질문 /월식 /애월 이후 /절망처럼 자라는 우기가 내 몸을 눅일 때 /깊은 우주, 당신 /고양이 사냥법 /오늘의 직선이 소멸로 향할 때 /다비 /
해설 _ 이경철
■ 시집 속의 시 한 편
슬픔은
두터워진다
노랗게 익기 전에
설움 속 돋친 햇살
살갗을 휘감아도
향기는
공중에 매달려
험살을 품는다
―「모과를 읽는 시간」 전문
■ 시인의 말
오늘도 은유와 서사가 살아 숨 쉬는
당신의 정원을 찾아 거닐어본다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나만의 씨앗을 품는다
당신을 위한 단 한 송이 꽃을 피우려
2022년 11월
박진형
■ 박진형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람.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학사), 불어불문학과(석사), 외국어교육과(박사 수료) 졸업. 2016년 《시에》로 시,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
첫댓글 박진형 시인님의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출간을 축하합니다!
박진형 시인의 첫 시조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