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식의 펜화로 찾아가는 사찰기행] <13> 해남 달마산 미황사
달마대사 이야기 전하는 땅끝마을 수수한 절
불교의 해로(海路) 유입설 전하는
남도의 아름다운 사찰
절 둘러싼 병풍같은 달마산 자락은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려
달마산 미황사 전경. 74x40cm, Pen drawing on paper.
한반도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사찰 해남 미황사(美黃寺)는 서울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먼 곳에 있어 가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예전에 가보았으나 친구가 해남에 살기도 해서 겸사겸사 펜화기행을 떠났다. 미황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동백 숲은 달마산 중턱까지 멋진 숲길을 만든다.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 동백은 짙푸른 잎새와 붉은 꽃잎으로 꽃길이 된다. 동백을 보는 운치는 바로 떨어진 꽃을 바라보는 멋이다.
미황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바닷길 전래인 해로유입설을 전하고 있는 천년고찰로 달마산을 병풍 삼아 산 중턱 비교적 낮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의조스님이 100여 명의 지역민과 함께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고 오는데 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리)에 닿았고 소 등에 그것을 싣고 오다가 느닷없이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가 바로 절터라고 여기고 그곳에 미황사를 일구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옛날에 인도를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러 온 낯선 이방인이 뭍에 오른 뒤 산으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땅끝마을 인근에 있는 산에 올라 자신을 석가모니의 28대 직계 제자인 보리달마라고 소개했고, 그 산을 달마산이라 이름 지었다 전해진다.
그 전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사찰입구에는 중국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달마상이 참배객을 반겨준다. 부리부리한 눈매의 달마대사가 가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펜화로 모습을 담아보며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한 설화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미황사는 한 때 두륜산 대흥사보다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유재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구와 혈투를 벌이다 피해를 입고 세력이 약화되었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의 말사이다. 천년고찰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며 ‘남도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른 바위능선이 참으로 멋진 곳이다. 요즈음은 주변의 트레킹 코스를 잘 개발하여 ‘달마고도’라고 부른다.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참으로 일품이라 오후에 사찰에 들르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입구의 일주문은 가로쓰기 현판이어서 이채롭고 현대적이란 느낌도 든다. 천왕문과 자하루를 거쳐 대웅전에 이른다. 미황사라는 명칭의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黃)’자는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달마대사상. 28x38cm, Pen drawing on korean paper.
미황사의 대표적인 모습은 멀리서 달마산을 배경으로 대웅전과 주변 당우가 들어오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관(View)이다. 여기에서 발길을 멈춘다. 대웅전은 단아한 편으로 웅장하지도 않고 단청이 없어 화려하지도 않으나 매우 기품 있는 모습이다. 대웅전은 보길도에서 가져온 느티나무로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바다 향기가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지는 해를 받아 아름다운 석양이 대웅전에 드리우면 마치 단청을 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조성해 놓았는데 가운데에 잘 알 수 없는 산스크리트어가 쓰여져 있고 천불도가 조성돼 있다.
기둥 밑의 주춧돌도 예사롭지 않다. 평범한 돌이 아니고 자라와 게 등이 새겨져 있어 바다에서 비롯된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최근 대들보의 안전문제로 해제 보수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볼 수 있었음이 다행이기도 하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긴 석조가 있고 약수가 흘러 방문객의 목을 축일 수 있다. 대응전과 주변 전각 그리고 달마산을 품은 풍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모습으로 작품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미황사 뒷산으로 향해 올라가 본다. 사자봉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우리나라 육지의 끝인 ‘땅끝’을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미황사의 볼거리는 대웅전과 각양각색의 해양생물이 새겨진 부도전이다. 무량수전 편액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조선시대 명필 이광사의 글씨였는데 당대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이광사는 조선의 글씨를 망가뜨렸다”며 자신의 필체로 바꿔 달게 했고 귀양에서 수양을 많이 해 겸손해진 탓인지 돌아가는 길에 들러 “다시 예전 현판으로 복원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추사의 예서체 편액은 아직도 전해진다.
달마산 도솔암. 24x33cm, Pen drawing on paper.
미황사에 간다면 달마산의 서쪽 정상 도솔봉 부근의 바위 위에 있는 도솔암에 가 봐야 한다. 당초 이곳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스님이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던 자리라고 한다. 이 암자에 진달래 필 때 간다면 아름다움은 더욱 배가 된다. 돌로 쌓은 담장 안에 있는 암자를 펜으로 그려본다. 여기서 며칠 쉬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지만 작은 암자이니 맘에만 품어본다.
암자 밑에는 어른 4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에 있는 용담이라는 샘이 있는데 일 년 내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고인다고 한다. 도솔암 앞에는 스님이 면벽수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바위와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신선암이 있다. 미황사 방문 후에는 땅끝마을도 가 보시고 명량이라 불렸던 울돌목도 가 보시라. 우리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감성을 일깨우는 다도해에서의 일몰도 지친 일상을 잊게 해주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usikim@naver.com
[불교신문 3726호/2022년7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