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춘 시집 『당신은 늘 그만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세종시인협회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석춘 시인의 시집 『당신은 늘 그만한 거리에 있었습니다』를 ‘오늘의문학 시인선 572호’로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2018년에 세종시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발간한 시집에 이어 두 번째 발간한 시집입니다.
장석춘 시인은 백수문학의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세종시인협회 회장, 백수문학회 부회장, 세종시 문학진흥위원회 위원, 세종시 세종학 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석춘의 시 골마실’에 문학작품 및 문학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출판사 서평(자작시 해설을 참고하였음)
#1
언젠가 누가 언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가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직업이 주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기자였기에,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무렵 상경하여 줄곧 서울에서 성장했다. 태생이 시골이어서 그랬던가, 가슴 답답하고 소음으로부터 먹먹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고, 그 결심은 2008년 말 실행에 옮겨졌다.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이라는 낯선 곳으로의 귀촌이었다. 50대 남성이라면 한두 번쯤은 열망해보았을.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충남 연기군’은 행정구역상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농촌에서 살고 있다. 주변 환경 자체가 바뀌면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주 미미한 자연물이라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나의 감정이 가지런히 뇌 속에 차곡차곡 포개졌다.
그런 감흥들은 귀촌 생활 10년 차에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어졌다. 첫 시집 ‘숯골지기’에 실린 시는 대부분 대지 위에서 꿈틀대는 것들이었다. 주렁주렁 찾아든, 하지만 까칠하고 텁텁한 열매 같은 것들이었다.
여기 숯골은 내겐 ‘생명의 터’ 그 자체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도 변함없이 ‘숯골 연가’를 부르고 있다.
#2
딱 당신이 그랬습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만큼
불러도 들릴 만큼의 거리에서
당신은 날 보고 있었습니다
- 「당신은 늘 그만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부분
‘그만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손으로 만져볼 수 없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뜬 사이다.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어도 소리로써 알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에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내내 그리워하겠다. 살아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 그리움은 詩의 씨앗이다. 詩가 그립다.
#3
나는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채워지는 것보다도 원하지 않는데도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글씨가 제대로 보이질 않아 으레 돋보기는 이제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이 편리한 돋보기를 곁에 두고 뭔가 읽고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매달 주어진 원고를 쓰고, 인터넷에서 그 글을 확인하면서 아직은 내가 삶의 대열에서 건재하다며 자존감을 느낀다. ‘뇌는 쓰면 쓸수록 성장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믿어 의심치 않고 뚜벅뚜벅 실행하는 중이다.
詩로써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요즘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의 효과가 떠오르면서 ‘치유’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에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문학치료’로 독서, 시 낭송, 필사 등이 널리 퍼져가고 있다. 詩 또한 문화콘텐츠로서 충분히 확장성을 갖고 있으며, 융복합예술 시대에 잘 어울리는 문학 장르이다.
불확실한 시대에 있어서 바득바득 애쓰는 사람들에게 詩가 ‘한 줌의 햇살’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詩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