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규 시집 『외출은 어려워』
동숭학술상 수상, 정훈문학상 대상, 세종애민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강헌규 시인이 새 시집 『외출은 어려워』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오늘의문학 시인선 557번’으로 발간된 이 시집은 ‘1부 남의 속도 모르고’ ‘2부 투가리가 그리워요’ ‘3부 꽃무릇 필 무렵’ ‘4부 가리고 덮음에 대하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중회 교수의 작품해설 ‘여든 셋의 외출, 그 아이러니와 재미’가 작품 세계를 관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수(傘壽, 80세)를 넘긴 시인의 세상 보기, 자잘한 에피소드, 반어적이거나 역설적인 발상 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룹니다.
= 서평(구중회 교수의 해설 중에서 가려뽑아 옮김)
#1
「외출의 어려움」이란 시 작품이 있다. 아주 재미가 있었다. 이 작품은 작중설자personer가 은행에 볼 일이 생겨서 집을 나섰다가 결국 일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은행까지 갔는데 결국 다른 통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건망증이랄까 퍼스너는 정신이 없는 상태다. 지갑과 휴대전화, 그리고 통장을 챙기고 장갑을 끼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돋보기를 끼고 나온 것을 발견한다. 독서나 연구를 하다가 돋보기를 쓴 채로 그냥 나온 것이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코로나 마스크와 귀 달린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도중에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세 번째 행동이다. 온 김에 생각하니 그 다음 손목시계, 메모지와 필기구(시인이란 모름지기 상이 떠오를 때 그 순간을 기록하는 버릇이 있다. 몽당연필. 볼펜은 길기 때문이다.)를 챙긴다. 결국 은행에 당도하여 직원에게 통장을 보였는데, 다른 은행 통장을 가지고 왔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가 돋보기를 일반 안경으로 바꾸기 위해, 두 번째는 비가 와서 우산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지만, 이 이전에 집안에서 몇 차례의 잊어버린 물건을 찾는 행위가 일어나게 된다. 결국 세 번째가 다른 통장에서 원래의 통장으로 바꾸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너무 지쳐서 누워버렸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바깥에 나갔던 아내가 돌아와, 잠자는 흉내를 내는 걸로 퍼스너의 행위는 끝을 맺는다.
#2
강 시인의 시 작품의 특징은 아이러니를 통하여 구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이러니가 두드러진 작품을 든다면, 「천장에 서 있는 파리에게」, 「층간 소음 예찬」, 「눈雪의 말」 등 세 편을 들고 싶다.
천장(天障)에 붙어 있는
네가 바로 선 거라면,
방바닥에 서 있는
내가 거꾸로 선 거다
우선 ‘파리’와 ‘인간’을 대비하여 동일시한 것이 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대상의 비교 그 자체가 일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우주를 기준으로 인간은 땅을 기준으로 대상을 놓고 보기 때문에, ‘파리는 선 것’이 된다. 파리의 기준이 우주를 상대로 할 때 서 있는 상태인 터이다.
#3
시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러므로 특수성(개성)이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획득하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작품은 오래오래 인류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항구성이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문학의 세 가지 요소라고 한다.
강 시인의 퍼스너는 이러한 사실들은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당당한 증오는/ 미지근한 사랑보다/ 떳떳한 일이다. // 도생만을 위해/ 참 마음을 감춤은/ 천년을 살아도 헛사는 일이다.’ 그리하여 죽은 뒤 100년이 된 자기의 해골 내지는 분골에게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