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발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말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어휘풀이]
-지줄대는 : 주절대는
-얼룩백이 황소 : 거무스레한 무늬를 지닌 황소
-해설피 : 해가 설핏할 때. 저물녘
-풀섶 : 풀숲
-함초롬 : 함초롬하게, 가지런하고 곱게
-성긴 : 드문드문한
[작품해설]
이 시는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대규모의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 비로소 밝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정지용의 대표작이다. 한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문학사에서 실종되었던 그는 최근 납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그에게 씌워진 멍에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지만, ‘한국 현대시의 효시오, 자각(自覺)’이라는 명예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정지용의 시사적 위치를 이것저것 장황하게 말하기보다는 청록파 세 시인(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을 『문장』지에 등단시킨 그들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그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는 우리말로 씌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지용만큼 체득하고 있던 시인도 드물다. 이러한 평가에 적합한 이 작품은, 그가 일본에 유학 중인 1923년 3월에 썼다고 하는, 그의 초기 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가 씌어진 1920년대 초가 『백조』를 중심으로 한 낭만적·퇴폐적 감정 분출의 풍조가 문단을 지배하였던 시기였음에 비추어 볼 때, 주로 1930년대나 되어야 니타나는 ‘고향 회상’의 시정(詩情)을 이처럼 차분한 어조로 시대를 앞당겨 노래했다는 것에서 그의 선도적 시 세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고향 충북 옥천을 떠나 낯선 타국 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은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가 노해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이 지줄대고’ ‘어룱백이 황소가 금빛 울음을 우는 곳’이며 ‘짚베개을 돋워 고이시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보편적 정서와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향수는 그만의 향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 향수로 확산된다.
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는(던) 곳’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의 정겹고 따슿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승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 · ‘해설피’ · ‘풀섶’ · ‘함초롬’ 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이 시는 수준 높은 서정성을 획득한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