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발자국
작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의 한 사제협회 회원들과 만남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폐쇄적이고 고상한 교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는 문이 열려 있는 집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홀로 두지 마십시오.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홀로두지 마십시오.
성체 앞에서 침묵하고 경배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런 다음 봉사가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이 일정표입니다. 사제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을 다루는 ‘사무직’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
마음이 열려 있는지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또한 교황은 마누엘 성인을 인용하며
“사제가 오늘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도 단순한 기도,
친근한 말, 형제적 환대, 끈기 있는 사목 활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보내는 오늘,
위 말씀이 많이 기억납니다.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내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살아가는 모습,
바로 우리가 임금으로 모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33) 하고 묻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철저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과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임금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섬김입니다. 복음에서 섬김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겸손하게 하느님의 사랑만을 드러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우리를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과 하느님께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에서 신앙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 예수님이 임금이 아닌
내가 임금으로 살았던 건 아닌가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는 행여나 잘못한 것은 없는지, 제대로 할 일을 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모습처럼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를 통해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부터 실천해 봅시다.
더불어 이웃을 섬기고 나아가 하느님을 섬기면서 하느님과 나를 알아가는
신앙생활의 참맛을 느끼는 연중시기의 마지막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글 : 崔哲 John Bosco 神父 – 광주대교구
임금이신 사람의 아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저의 ‘놀이터’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집에서 놀다가 심심해지면 아버지께 ‘비행기를 태워 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제 눈에 ‘큰 산’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비행기 놀이’를 해주시면 날아갈 듯
행복했습니다. 이렇듯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저에게 ‘큰 산’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제가 신학생이 되었던 때,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더는 아버지가 ‘큰 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어깨의 감촉만이 느껴졌죠.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한의원에 가서 침 맞으시면, 훨씬 부드러워진대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소탈하게 웃으시면서, “아빠가 한의원에 갈 시간이 어딨어.
아들이 이렇게 종종 주물러 줘.”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여느 아들들이 그렇듯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굳은 어깨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무게’이자 ‘희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날,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돌처럼 굳은 아버지의 어깨에 놓인 ‘무게’와 ‘희생’ 덕분에
그동안 가족들이 건강히 지낼 수 있었음을 두 손과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이 대축일을 지내다보면, ‘예수님’과 ‘왕’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오늘 제1독서만이 아니라, 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지칭할 때도 사용하시는 표현인데,
‘스스로 박해를 감당하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속한 나라의 임금님은 우리를 옭아매고 옥죄는 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박해를 견뎌내고 섬기는 왕’이심을 알려주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백성’을 ‘땅’에 ‘임금’을 ‘하늘’에 빗대기도 하는데,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님에 따르면, 독일어에서
‘하늘’이란 말은 온몸을 감싸는 ‘셔츠’라는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같은 임금이신 예수님’은
백성인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분’이심도 함께 떠올릴 수 있겠죠.
선배 신부님을 통해 알게 된, 한 단상을 나누며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어떤 의미에서)하느님은 ‘빛의 하느님’이 아닌 ‘어둠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눈은 어둡기에, 누가 잘났든 못났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다 똑같은 사랑스러운 자녀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글 : 姜有彬 Dominic 神父 – 수원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