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낮술을 이렇게 시작된다.
“똥 과장, 아니 우리의 동 영철 과장이 드디어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간혹 몇몇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 반주삼아 낮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 와 잽싸게 양치질을 하고 정색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도록 강요했다.
이른바 내선일체를 세뇌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성인용과 아동용으로 나누어 만든 이 맹세의 아동용은 이렇다.
“①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②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③우리들은 인고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는 1947년 7월 ‘우리의 맹세’를 제정했다.
모든 교과서와 책 뒤에 의무적으로 싣게 했고, 학생들은 이를 빠짐없이 외워야 했다.
“첫째,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둘째,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셋째,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이때의 통일정책은 평화통일이 아니었다. 반공정신으로 무장해 무력으로 북진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했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그해, 나와 같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를 외치며 죽었다.
일본 왕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다하라는 일본의 ‘교육칙어’를 그대로 본뜬 것이라는 지식인들의 비판을 나는 어려서 알지 못했다.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교실 앞 벽에 붙일 국민교육헌장을 매직으로 썼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렇게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은 ‘대통령 박정희’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1993년까지 무려 25년간이나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던, 그 무시무시한.
내 소설 ‘낮술’의 주인공 똥과장은 나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었고,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박정희의 또 다른 분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