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진 시집[혼돈의 세월,못다 한 노래]에 부쳐
趙鳳濟(평론가)
리듬(rhythm)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대체로 음률 박자 절주(節奏) 일정한 폭과 음정에서 정해진 어조나 억양같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종래 리듬은 시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 까닭은 시는 감동에서 생겨나며 감동은 마음의 파동이므로 이것을 솔직하게 전하는 시가 가장 순수한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리듬의 생리설을 주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시가 다만 청각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던 시대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고 근대 현대문화의 눈부신 발달에 따르는 시각세계의 확대와 문학에 있어서의 지성의 중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시의 매력의 중심은 멜로디적인 음악적 세계에서 의미 내지는 영상(이미지)이 그려내는 심적인 조형성의 세계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라 할수 있다.
원래 음악에서 생겨난 리듬이 오늘날 그림 조각 건축등의 시각의 세게에서도 쓰이고 잇다는 것은 매우 암시적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시에있어서의 리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동적인 음악에서뿐 아니라 정적인 외 내부에 때로는 보다 강한 움직임을 간직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이것이 시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는 요즘의 시의 스타일에 있어서의 "움직임"과"시간"에 관해서 생각할 때 추상 회화를 포함하여 현대 회화에서도 무브만(운동)이 화면의 메커니즘에 요구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말을 매체로 하는 시의 기능에 있어서는 이 문제는 더욱 중대성을 띠고있다. 강조해온 이미지와 리듬을 중심으로 이여진 시인의 작품[그대 묘비 앞에서]를 음미하기로 한다.
하늘빛 구름따라 세월이 가도
흐르는 강물 따라 그때는 가도
못잊어 애태우는 님이 있어라
흘린듯한 기약은 전설이 되고
신화같은 추억은 꿈이 됬건만
도사려 맘 속 깊히 자리 잡은 님
탱자나무 울타리에 미련 열리고
남빛 포도송이 사랑이 익어
나르는 새들도 축복하였네
열락의 낙원에서
나 기타를 뜯고
그대 노래 부를 때
잔잔한 호수는 행복에 젖어
은물결만 조용히 밀려만 갔지
그러나 지금은 흘러 버린 꿈
영원히 아물수 없는 가슴앓이 병
나 그대 곁에 조용히 누우면
세상의 어느 누구 기억해 줄까
오늘도 속절없이
그대 묘비 앞에서
눈물 짓노라 옛날을.
[그대 묘비 앞에서] 전문
시의 톤이 한 마디로 엘레지(elegy)적이다. 그러나 30년대의 감상적인 시는 아니다.
엘레지는 죽은 자를 애도하고 마음이나 죽은 자의 추억을 노래하는 애석의 정의 내용을 주로한 노래 인것이다. 또한 한 편으로 우아하고 평상적인 서정시라 할수도 있고 이런 시를 오드(ode)라 할수도 있다.
중간에서 약간 흐트러지기는 했으나 대체로 일정한 리듬에 의해서 시가 전개되고 있는것을 알수 있다.
제목과 끝연에서 "묘비"란 말이 두번 나오는데 이것은 이 시에서 최고의 이미지라 할것이다.
리듬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이며 이미지는 고정하고 있는것이다.
이 시에는 유동과 고정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것으로 생각된다.
시의 구절의 연결이 때떼로 야간 부자연스런 데가 없지 않으나 전체의 톤에 의해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는것은 다행한 일이다. "기약은 전설이 되고""울타리에 미련 열리고" 등의 구절은 약간 기발한 데가 없지 않다.
슬픔을 노래 했으나 감상에 흐르지 않는 데가 작품의 생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무난하다.
다음은 [어머님 유언]을 음미하기로 한다.
"나 죽으면 영감 옆에 묻어주라"
젊어선 술 도박에 밤 새는 줄 모르시고
늙어선 중풍 3년
어이 그리 좋으셔서......
"니들은 몰라"
"니들은 몰라"
꺼이꺼이 통곡하며
아버님 상여 뒤따르시던
어머님
그립습니다.
[어머님 유언]전문
여기서는 실제로 시각에는 나타나지 않는 부부의 끈덕진 정을 노래하고 있다.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시각의 확대라 할수 있다.
이 아버지는 어쩌면 한국 남성의 운명적인 일생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종래의 한국 남성은 방탕을 거듭하다가 늙어서 병들면 조강지처 곁으로 와서 끝내 숨을 거두는 것이 상례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통곡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끈덕진 한국적 부부 관계에 묶여 남들은 알수 없는 부부의 끈에 대한 끈덕짐을 말해 주고 있다. 소품식으로 꾸린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 여성의 슬픔과 끈덕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간결한 솜씨로 꾸려낸 작품이라 할수 있다.
다음은 [어머님 자리]를 보기로 하겠다.
숱한 세월 뒤로 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자리
어머님 섰던 자리
미영밭 고랑에도
고추밭 고랑에도
어머님 땀내음 아직
달콤하게 코 끝을 스미는데
어머님 어디 계십니까
한여름 땡볕
땀인지 눈물인지 범벅이된 가슴 헤쳐
젖 한통 입에 물고
그렇게나 흐믓했던 나
어머님 섰던 자리 제가 왔는데
절골 비탈 밭에 김매고 계십니까
아버님 산소에서
잡초 뽑고 계십니까
다시 또 내닫는 인생의 발길
이 세월 어디쯤에
저를 기다리십니까.
[어머님 자리]전문
새로운 사모곡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이것은 이미지 이상의것이라 할수 잇다. 약간 정황한 느낌이 없지도 않으나 우리가 태진아의 노래 속에 특히 너머가기 힘든 대목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한 느낌을 받게 되는것은 그 가요곡 나름의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여러가지 이미지가 착종하고 있으나 가장 뚜렷하고 확고한 이미지는 바로 어머니인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닐수 없다.
끝연은 자신의 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처럼 되려면 아직도 몇십년의 여유가 느껴지지만 그것이 아무리 길어도 바로 그날에 되는 날이 있을것이며 그것이 어디쯤의 세월이 될는지는 몰라도 거기서 기다릴것인가 하는 것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끝내는 자기 차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 사모곡으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칸나가 피기 전에 가세요]를 감상해 본다.
칸나가
피기 전에 가세요
못다한 사연
너무 많은 여름밤 하늘의
성좌가 찬란해
혼자 그냥
울고 말지라도
칸나가 피기전에 가세요
불붓듯 빠알간
꽃잎이 시원한 잎줄기에
솟아날 때
몸 둘 곳 몰라
그냥 남아 있겠어요
혼자여도
나 혼자여도
머나먼 밤하늘 별길 찾아
그렇게 그냥 남아 있겠어요
터질 듯 칸나의 꽃잎이
핏빛으로 물들 때
찬란한 슬픔
어찌 감당 하라고
묵묵히 웃고만 있는가요
가세요
칸나의 꽃잎이
피어나기 전에.
[칸나가 피기전에 가세요] 전문
우리 기요에 "가을엔 떠나지 말고/하얀 겨울에 떠나요' 라는 노래가 있다.
가요곡을 예로들기는 뭐하지만 대략 그와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로 볼수 있다.
여기서는 칸나가 피기전에 가라고 했는데 3연과 4연이 대체로 칸나가 피기전에 떠나야 하는 까닭이 서술되어있다.
터질듯이 칸나의 꽃잎이 핏빛으로 물들때 그 찬란한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것이니 칸나가 피기전에 떠나라는 것이다.
여기서"찬란한 슬픔"이란 말이 나오는데 칸나의 화려함을 "찬란한 슬픔"이라 한데서 몹시 암시적이라 할수 있다.
말하자면 한여름이 되기 전 그것은 칸나가 피기전에 가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는 시라 할수 잇다.
다음은 [타인에게]를 음미 한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 했읍니다
꽃잠옷 살포시
당신 몸을 감싸고
조용히 웃던......
소낙비 내리고
비바람 치던
어느 날엔가
술취해 들어선 방
아늑한 방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는
긴 밤의 이야기를
어쩌자고 이렇게
혼자만 외고 있을까요
[타인에게] 전문
자신이 아닌 자는 일단 모두 타인인 것이다.
4연의 "당신과 함께 할수 없는/긴 밤의 이야기를/어쩌자고 이렇게/혼자만 외고 잇을까요"라 했는데 여기서 당신의 대칭이 되는자 곧 "나"인것이다. 혼자외고 있는 인간도 타인이며 이 푸념을 듣고 잇을 어떤 존재(타인)도 타인인 것이며 "타인"이란 말은 타인이 범접할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타인을 말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도 타인이며 그 타인의 눈에 비친 나도 타인인 것이다.
그 타인속에서 자신을 발견 할 수있는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과제 일는지는 모르겠다.
이 시는 그런 언저리를 내 비치고 있다.
이 시인의 시는 대체로 그 저변을 흐르는 애수를 그 애수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현대적인 서정으로 시화 했다는 데서 그 특색을 찾을수 있겠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것이며 언어를 통한 생활 일반이 약간은 세련되어 있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사모곡에 해당되는 작품은 고금을 통하여 수 없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시점이나 표현의 방식은 천차 만별인것이다.
거기에 개개인의 창조적 능력에 따라 다른 것을 볼수 있다.
그러니까 그 노래는 언제나 새 노래인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개성이라 한다.그리고 단연코 어머니에 대한 주제가 많은 것은 어린 시절의 애틋한 모정이 그의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있는것을 알 수 있다.
시인으로서 한단계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초기의 모티브에서 벗어나 제2, 제3의 모티브로 나가야 할것이다.
ㅅ라는 것은 결국은 사물에 대한 사고 방식이나 느낌의 방식을 끊임없이 단련해 가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고 시인은 이런 노력을 절대로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