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백신 사기극은 짐승의 표의 훈련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훈련을 막연히 사람의 훈련으로 생각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제가 겪은 훈련의 모습은 모두 사람의 훈련의 모습이었으므로 나타나는 착시현상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훈련과 다른 하나님의 훈련의 모습을 찾아보고 어떻게 사람의 훈련과 하나님의 훈련이 다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훈련이라는 표현보다 시험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제가 훈련이라고 시험을 표현한 것은 시험은 개인적인 것이고, 훈련은 단체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코로나백신 사기극을 훈련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험은 개인이건 단체건 그 본질은 시험이 맞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육신의 시각의 경험으로 일어난 착시현상이었습니다.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
창세기 22장 1절 2절
아브라함으로써는 견디기 어려운 시험(훈련)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금이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브라함에게만 일어나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러한 시험(훈련)의 끝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내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창세기 22절 10절 11절 12절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이기 직전까지 이르는 데에 까지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이 하는 훈련과 하나님의 시험이 어떻게 다른지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지금의 백신 사기극이 하나님의 시험(훈련)이라면 이 시험의 끝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시험은 믿음의 성도들을 위하여 단축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브라함의 시험도 단축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끝은 있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권세안에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의 출애굽기 말씀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주의 천사입니다. 그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심하고 확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시험할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될 아브라함을 확인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너희가 소망을 두고 있는 모세라.
요한복음 5장 45절
이처럼 고소자는 모세, 천사, 사탄이기도 합니다. 욥을 고소한 자는 사탄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합당한지를 확인하고자 하고 하나님께 근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백신사기극의 시험도 이러한 과정이며, 어떤 자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근거를 요구한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합당한 근거를 그의 행위와 열매로 증명하고, 어떤 이들은 근거가 증거되지 않아 공의의 구원의 언약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돌아서 바알스폰 맞은편 믹돌과 바다 사이 피하히롯 앞에서 바닷가에 진을 칠지니라.
이는 파라오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혼란에 빠져 광야에 갇혔도다.' 할것임이라.
출애굽기 14장 1절 2절 3절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닷가로 안내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배수진을 치는 모양과도 같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쫓아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쫓아오는 파라오의 기병들을 보고 두려움에 빠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O 파라오가 가까이 다가올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을 드니, 보라, 이집트인들이 그들에게로 진군해 오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며 주께 부르짖었더라.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이집트에 무덤이 없어서 네가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느냐?
출애굽기 14장 10절 1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운 상황에서 주를 찾지만 모세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주를 찾지만 속으로는 이집트에서 그들을 구해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의 사례인데 이것은 아브라함의 시험과 달리 제가 생각했던 훈련 즉 단체적인 시험에 더 가깝습니다.
즉 지금의 백신사기극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똑같은 시험이 주어지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닷가에 갇히게 하시고,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신 것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시험(훈련)으로 바닷가앞에서 뒤에서는 적들이 쫓아오는 상황을 연출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모두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백신의 상황에서 백신패스로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닷가에서 이집트의 파라오의 기병을 바라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너는 네 막대기를 들어 네 손을 바다위로 뻗쳐서 그것을 가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를 통과해서 마른 땅 위를 가리라.
출애굽기 14장 16절
지금의 암담한 백신의 상황도 바다가 갈라져서 길이 열리는 것처럼 끝까지 절망하지 않으면 그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백신으로 일어나는 이 시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과 동일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신 사기극의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에 굴복하면 세상이 멸망할때 함께 멸망될 것이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의 부활에 우리도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소멸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백신을 맞음은 그 소멸이 조금 빠르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음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중세에 순교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될 것입니다. 순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를 강제로 빼앗기는 것입니다. 순교하는 사람의 육은 백신접종으로 육이 망가지는 것과 물리적으로는 같습니다. 즉 믿음과 육체는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을 지켜 인내하며 말씀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백신을 받음도 그들의 무지와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그들의 육체를 잃어버리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짐승의 표는 몸에 심고,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하는 두가지 과정을 모두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자손처럼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마십시요.
그가 그곳의 이름을 맛사바와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요,
이는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라.
출애굽기 17장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목격하였으며,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그 마른 땅을 통과하였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랬던 이들이 광야에서 잠시의 목마름을 인내하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데에 이른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많은 은혜가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겪었던 심한 목마름과 같은 고난의 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하게 하시지만 구해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고난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백신 사기극의 시험(훈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온전한 믿음의 증거를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을 사람의 형식적인 훈련과 하나님의 진정한 시험(훈련)의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사람의 훈련이 엉성하고 실제로 도움이 안될 수도 있을 정도로 끝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훈련은 절대로 엉성할 수 없고, 실제로 반드시 도움이 되도록 실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백신의 사기극은 백신에 대해서 애매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훈련은 진실을 접하고 신념으로 간직할 수 있는 그릇을 검증하는 것으로 보이고,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진리를 신념으로 지키는 사람을 고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중에는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겉의 이름표보다 그의 신념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을 가졌다는 이름표를 가진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백신을 분별하지 못하고 맞음은 그들이 좋은 그릇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하여 그 미혹에 속아 탈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탈락함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쓰임을 받을 재목에서 탈락됨을 의미하며, 상급의 손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훈련은 그 자체로는 합격과 탈락이 없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심판이 아니지만 탈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자손의 입장에서 이 백신사기극을 바라보고, 그 끝이 어떻게 끝나는 지에 대해서 말씀으로 미리 알았으므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믿고 초조해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훈련)은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성경말씀으로 확인하고 끝까지 절망하지 말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힘들어 보이지만 약속을 확신하고 인내하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마태복음 6장 13절
우리를 고난속에 몰아넣고 죽이는 권세는 사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탄과 사탄의 종들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생명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