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귀는 두 개다
예전부터 군에서 운영하던 "마음의 편지"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고충을 안고 있는 병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음으로써 부조리를 경감시키고, 혹시 모를 인사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해 고안된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충 있는 병사가 자물쇠로 잠겨진 '편지통"에 편지를 적어 넣으면 담당 간부가 확인한 뒤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는 방식입니다. 일종의 군대 판 대나무 숲이랄까? 때문에 이 제도의 핵심은 "비밀 보장"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떠했을까요? 군대 물정에 어수룩한 이등병이 이 제도가 있음을 들었기에 참다못해 자신의 힘든 얘기를 적어 넣습니다.
그러면 다음 날 참사가 벌어집니다. 전 부대원이 편지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발자라며 조리돌림을 당했습니다. 나는 어떤 관리자가 조회 시간에 편지를 적은 병사를 언급하며 그 친구를 잘 대해 주라고 당부하는 것까지도 보았습니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뒤라면 누군가로부터 "뭐 어려운 것 있나?"라는 질문을 듣더라도 그 병사는 단 1초의 망설이도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제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던 녀석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까지도 모두 동일한 메시지가 뇌리에 각인됩니다. "입을 다물자!"
그렇게 대한민국 남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비슷한 시점에 발현되기 시작하고, 전역 후 사회로까지 전이됩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팬을 들어 적는 "마음의 편지"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작성하는 편지가 되었고, 부대장에게만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완벽한 비밀 보장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 제도를 실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는 믿음이 기꺼이 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부조리가 해소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비슷한 사례에 노출됩니다.
자신의 발성 기관에는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미안하니다"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 말입니다. 이처럼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 아무에게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비참합니다. 마음에 병들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듣는 이가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회복은 시작됩니다. 아직 어떠한 해결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가 내 주변에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내 목소리를 듣는 이가 얼마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이것이 "고립"과 "연결"을, 나아가 "삶"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많은 이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공간을 감싸고 있는 배경 음악부터 "윙~"하며 커피를 내리는 커피 추출기의 소리와 핸드폰 벨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 어떤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어떤 소리는 좀처럼 안 들립니다. 인간의 귀는 가청 범위 내에 있는 수백 가지 소리를 동시에 잡아내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중 일부만을 듣게 합니다. 결국은 관심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요? 관심 있는 것의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무관심한 것의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듣고 싶은 소리를 살리기 위해, 심지어 그 소리만을 듣기 위해 나머지 소리를 하나씩 지워 나갑니다. 그렇게 모든 소리를 지워 가다 보면 결국 자기 소리만 들리는 데 이릅니다. 아니, 자기 소리마저 지워버리는 데까지 이를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의 귀는 분명 두 개입니다. 자신의 소리만 듣지 말고 이웃의 소리도 들으라는 창조자의 뜻이 아닐까요? 나와 한 모을 이루어야 할 그, 나의 이야기와 연결되어야 할 그의 이야기를 최소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