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5일 가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 복음: 마태오 22,34-40)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삶에서 우리는 언제 길을 잃게 되는가?>
2018년 대한민국 청년 수 1,400만 명, 이 중 69.5%가 무기력증, 불안증, 우울증을 경험했고 이 수는 4년 전보다 약 30%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아마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졌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유튜브 동영상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삶이 힘든 20대가 보면 폭풍 오열 각인 영상」에서는 삶에 힘겨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꿈을 잃은 사회 초년생,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취업 준비생, 승무원 포기한 배우 지망생, 고3 수험생 등이었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하루 수면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일주일에 몇 번 사람들과 어울리나요?”, “모든 일이 힘들게 느껴지나요?”, “꿈이 있나요?”, “하루에 몇 번 소리 내 웃나요?”
그리고 뒷장에는 같은 질문 앞에 ‘어린 시절에’란 단어를 붙였습니다. 어린 시절 수면시간은 얼마였나요? 어린 시절 몇 번 소리 내어 웃어보았나요? 등입니다. 당연히 어린 시절이 앞길이 막막한 청년들보다 훨씬 행복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행복해지자고 사는 건데 왜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면서도 결국엔 길을 잃고 말까요? 아이 때는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부모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빠진 우리도 그래서 길을 잃습니다.
‘비벡 H 머시’의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라는 책은 ‘외로움’과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복권 당첨자가 머시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복권 당첨된 것은 저에게 저주가 되었어요.”
“아니, 왜요?”
“복권 당첨되기 전에는 직장 동료, 친구와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부자 동네로 이사 오고 나니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집에 갇혀있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행복은 하느님께 속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어린이는 이를 잘 압니다. 하지만 어른은 돈이나 범죄 집단에 의존하려 합니다. 그럼으로써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쉽게 길을 잃는 이유는 행복을 위한 핵심 계명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율법 교사가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길을 잃은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낫습니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도 이런 내용입니다. 어린 크리스토퍼 로빈은 ‘100에이커 숲’에서 곰돌이 푸를 포함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기숙학교에 보내지면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삶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우리는 크리스토퍼가 자라서 에블린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마침내 매들린이라는 딸을 갖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런던의 한 여행 가방 회사에서 효율성 전문가로 일합니다. 직업에 대한 요구와 전쟁의 트라우마로 그는 가족, 특히 딸 매들린과 멀어집니다. 주말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내와 딸만 시골로 보내고 자신은 일에 매진합니다.
우연히 곰돌이 푸는 런던 도시에서 크리스토퍼 로빈을 만납니다. 로빈은 푸가 반가우면서도 귀찮습니다. 그를 100에이커 숲으로 돌려주러 왔다가 자신이 일에 지쳐서 가족과 친구들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숲에는 괴물이 있었는데 결국 자신이 괴물 헤팔럼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100에이커 숲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구덩이에 빠졌더라도 잠시 기절해 있으면 비가 와서 물이 차올라 몸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발버둥 치면 더 가라앉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에 둥둥 떠내려가면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운명에 자기 자신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자신이 그러한 동물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은 그런 환경에서 살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도, 회사에 다니는 것도 가족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가족과 친구를 돌볼 시간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제가 신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친밀한 관계는 하나도 맺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그리도 쉽게 잊을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운전할 때 초보나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차선에 집중합니다. 저도 전방에서 안개가 껴서 길이 안 보일 때 길이 아닌 벽을 보며 운전한 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곁가지를 보며 결국 길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정말 벽만 보고 운전하다가 진짜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습니다. 사탄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가게 합니다. 그 두려움이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곰돌이 푸와 친구들은 100에이커 숲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갑니다. 그럴 때 친구를 생각할 여유가 생깁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두려움을 해결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계심을 믿고 의탁하면 지금 이 순간 나는 100에이커 숲에 머물게 됩니다.
출처: 원글보기; ▶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