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와 빵의 기적
창세 6,5-7,10; 마르 8,14-21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2023.2.14.; 이기우 신부
오늘 말씀은 노아의 방주와 빵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땅에 퍼진 카인의 후예들이 저지르는 죄가 세상에 가득차자 하느님께서는 대홍수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는, 셋의 후손으로서 의롭고 흠없이 살던 노아(창세 6,9)를 홍수의 심판 후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의 조상으로 지목하여 구하셨습니다.
이때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서 노아가 만든 방주(길이 삼백 암마, 너비 쉰 암마, 높이 서른 암마, 창세 6,15)는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현대의 조선공학자들이 길이와 너비가 6:1의 비율로 된 이 방주를 실제로 만들어서 인공적인 파도와 비바람 등 거친 기상조건 속에서 실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방주에는 지붕은 있으나 노나 키가 없어 뜨기만 하고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는데도 과연 매우 뛰어난 선박안정성을 보였음을 입증하였습니다. 이 치수대로 만들어진 방주는, 부피는 43,200 입방미터로서 이는 한 량에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는 화차 522량에 해당하며, 넓이는 농구 코트 20개를 10개씩 2열로 배열할 수 있는 정도이고, 길이는 축구장보다 더 길고 폭은 약간 좁은 형태로 상·중·하의 삼층 구조를 지닌 거대한 바지선 형태였습니다.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노아가 만든 방주가 어떤 기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했던 이유는 그 당시에 단지 비만 많이 내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40일 동안 쉬지 않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창세 7,4.17) 동안에 지구 내부에 있는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는”(창세 7,11) 대격변을 동반하였습니다. 최근 조사된 지질학적 발견에 의하면, 지구상 대부분의 지역에 수백m에서 수백km 깊이로 쌓여 있는 퇴적지층, 강 같이 흘렀던 용암이 굳은 바위층,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는 산들, 바다 속에 깊게 패인 해저 협곡, 지구를 휘감고 있는 해저산맥, 엄청난 넓이로 평행하게 쌓여져 있는 지층,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맥의 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의 화석, 남극과 북극 지방에서 발견되는 두터운 석탄층, 온대지역의 풀을 먹다 갑자기 얼어죽은 시베리아 매머드들, 지층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유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변화가 아니라 대홍수 같은 격변으로 급하게 형성된 결과임을 말해줍니다.
대홍수는 지구의 기후와 기상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수많은 동식물의 화석이 지구상 곳곳에 분포되어 발견되는 가운데 북반구나 남반구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의 화석과 동일한 화석이 남극지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현상에서 보듯이 대홍수 전에 지구 전체는 따뜻한 아열대 기후여서 지역에 따른 극심한 기온차이도 없었습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실 정도로(창세 2,6) 온화했던 기후가 홍수 후에 추위와 더위가 생겨났습니다(창세 8,22). 그러고 보면 지구와 인류에게 닥친 빙하기도 대홍수 후에 생겨난 기상 이변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한덩어리로 붙어 있었던 땅 덩어리들이 갈라진 후 이동하여 지금과 같은 여러 대륙의 모습이 되었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융기와 침강 작용을 동반한 엄청난 지질 변동이 일어났고, 바다 속에서도 산맥과 해구들이 생겨 대홍수로 쏟아져 내린 물을 가두었으며, 궁창 위에서 지구를 태양열로부터 보호해주던 물이 쏟아져 내린 후부터 지역에 따른 극심한 기온차이가 발생하여 지금과 같은 열대, 아열대, 온대, 한대 등 다양한 기후지역대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인류를 심판하신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로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예수님께서는 대홍수 심판의 교훈을 잊어버린 채 여전히 죄악을 저지르고 있던 카인의 후예들, 즉 바리사이들과 헤로데가 퍼뜨리는 ‘누룩’(마르 8,15)에 대해 경고하시는 한편,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는 열두 광주리가 남았고, 사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는 일곱 바구니가 남았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사도들의 제자인 고대 교회의 교부들은 이 ‘열두 광주리’는 열두 제자와 같은 숫자로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의미한다고 풀이하였고, ‘일곱 바구니’는 예수님의 생애를 압축하여 교회가 제정한 일곱 성사를 의미한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또 다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루카 17,27)고 홍수의 교훈을 상기시키신 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보여주시는 징표를 알아보지 못하고 일상사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세태는 노아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하늘에 피어난 무지개 속에서 다시는 멸하지 않고 평화를 주시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읽었습니다. 이는 힘이나 부, 명예 같은 수단 가치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를 도구로 삼아서 평화와 같은 목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인간의 응답도 뜻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와 칠 성사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특히 ‘빵의 기적’이 재현되는 성체성사야말로 우리가 이룩해야 할 사랑의 문명을 일깨워주는 은총입니다.
첫댓글 셋에서 노아.. 이후 아브라함, 이사악 등으로 이어질 예수님의 혈연적 기원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정결한 짐승 뿐만 아니라 부정한 짐승도 배에 싣게 하신 하느님의 섭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무지개를 보며 하느님을 찬양했던 노아의 모습과 비슷하게 하느님을 찬양했을 우리 민족의 모습도 떠올려 봅니다. 12 광주리의 교회와 7 광주리의 성사가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극복하는 길임을 묵상해 봅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이 '키릴 문자'의 기원임을 떠올려 보며 슬라브까지 묵묵히 걸어갔을 두 사도의 걸음과 신앙 전파를 그려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결하다’든가 ‘부정하다’는 성서의 표현은 도덕적인 표현이 아니라 위생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번제물로 적합한 기준도 1년생 수컷인 것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암컷 동물에게는 주기적으로 생리 현상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부정해진다’는 것은 생리혈이 감염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서로 조심햐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도 아기 예수님을 출산하시고 나서 40일만에 정결례를 치르셨습니다. 수유기간에는 생리혈이 멈추니까요.
@이기우 감사합니다. 제가 문맥만 보고 도덕적인 측면으로 이해를 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