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輓詞) [ 계동 전경창 선생을 애도하며 ]
부사(府使) 권문해(權文海)
斯人何幸挺南荒
少小聲名間世良
珥筆螭墀嚴衮鉞
振綱烏府肅風霜
剛腸不逐人言改
清論能扶國脈昌
天步漸艱還奪速
忍令吾輩赋哀章
이 사람이 남쪽 변방에 태어나시니 그 얼마나 다행한가?
젊어서부터 간세(間世)의 인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네.
붓대머리에 꽂고 대궐 뜰에서 엄하게 포폄(褒貶)가하고
사헌부에서는 엄숙히도 숙살한 풍상의 기강 떨쳤도다.
강장(剛腸)의 자세, 사람의 말을 따라 고치지 않고
맑은 논의는 능히 국맥(國脈)을 창달할 수 있었네.
천운이 험난하여 도로 재빨리도 앗아가니
차마 우리들로 하여금 슬픈 만사를 짓게 하네 그려.
[출처] 국역 계동선생문집 [國譯 溪東先生文集]
● 권문해 [ 權文海 ]
정의
1534(중종 29)∼1591(선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내용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호원(灝元), 호는 초간(草澗). 아버지는 지(祉)이다.
1560년(명종 1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부승지·관찰사를 지내고 1591년에 사간이 되었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친교가 있었다.
저서로는 우리 나라의 고금문적(古今文籍)을 널리 참고하여 단군시대로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과 문집으로 『초간집』이 있다. 예천봉산서원(鳳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초간집(草澗集)』
『신국어학사(新國語學史)』(김민수, 일조각, 1980)
[네이버 지식백과] 권문해 [權文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