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스님이 길은 달
이규보(李奎報 : 1168~1241)
산사의 스님 달빛이 탐나서
물 항아리에 함께 걸었네
산사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았네
물 항아리 기울이자 달 또한 빈 것을
詠井中月(영정중월)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并汲一甁中(병급일병중)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어휘풀이]
-詠井中月(영정중월) : 우물 속의 달을 읊음.
[역사 이야기]
이규보(李奎報)는 고려 고종 때의 문신으로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며 시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 좋아새 자칭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고 했다. 그는 명문장가로 그가 지은 시는 당대를 풍미했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 격퇴하기도 했다. 저서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가전체 소설로,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국선생전(麴先生傳)』,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이 있다.
이규보는 1168년 태어났다. 이 해가 의종 22년이었는데 그로부터 꼭 2년 뒤 무신의 난이 발발했다. 그는 9세에 시를 짓는 신동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울분을 술로 달래며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20대 초반까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규보는 백운거사(白雲居士)로 자처하고 시를 지으며 노장사상(老莊思想)에 심취했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실권을 잡은 것이 1196년, 무신정권은 최충런에 이르러 방향을 잡게 된다. 이규보의 나이 28세 때이다. 이규보는 현실적인 길을 찾기로 했다. 이규보는 최충헌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최충헌에게 시문을 지어 보냈다. 그를 알아본 최충런이 이규보를 등용한 때가 이규보의 나이 32세 전후로 알려져 있따. 이규보는 1207년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되고 1230년에는 판위의시사(判衛尉寺事)를 지냈다.
문인이라곤 시골의 서당 선생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내몰아친 무인정권으로선 중국에 보낼 공문 하나 만들기 어려웠다. 그런 그들에게 거부감을 갖지 않는 문인 실력을 갖춘 신하가 절대적으로 절실했는데, 거기에 이규보가 등장한 것이다. 이규보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했다. 그가 25세 때 지은 『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 그의 재능을 나타냈는데 이은 오늘날 민족영웅 서사시로 평가받는다.
그 당시 무인정권시대는 왕은 있으나 허울뿐이고 무인끼리도 힘 있는 ㅈ가가 약한 자를 죽이는 난맥상이 펼쳐져 국가기강은 무너지고 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았다.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난 이규보는 가슴 설레는 영웅, 동명성왕 고주몽을 만난다. 민족영울 서사시 동명성왕으로 인해 고구려의 역사를 다시 살려 냄과 동시에 역경을 이겨 낸 슬기로운 왕의 모습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 주게 되었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