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세 독립운동가 인원 (仁元) 보명 : 택원(宅元)
충정공(절효공파)
공은 유석 조병옥 박사의 부친으로 자는 성탁(聖鐸)이요 아버지 재형(載衡)의 네 아들중 셋째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연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천안 목천으로 이사하여 1919년 4월 1일 (음3월1일) 홍일선. 김교선. 한동규.이백하.이순구.유관순등과 함께 병천면 아우내 장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겨 사실상 3.1 천안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의 선봉이자 지휘자이다.
그는 4월1일 오후1시경 장터로 모여든 3천여명의 군중앞에서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후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선창함으로 독립만세 시위를 점화시켜 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돌아 헌병 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군경들이 총을 난사하고 천안에서 지원받은 헌병과 수비대까지 합세하여 포악무도하게 총칼을 휘둘러 유관순 아버지 유중권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날 오후 4시경 사망자의 유가족과 시위 군중이 순국한 시신을 헌병 주재소로 옮겨놓고 항의할 무렵 그의 차남 병호(炳鎬).유중권의 동생 유중무 유관순 등과 주재소로 달려가 주재소장과 헌병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다 체포되어 징역 3년의 옥고를 치르고 여독으로 1931년 7월 25일 별세 하였다.
일본군이 묘를 쓰지 못하게 방해하여 한밤중 몰래 지게로 동면 고도리 외진 곳에 모시고 아들 조병옥 박사가 친필로 묘비를 세웠는데 6,25전란때 인민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조병옥의 활약으로 패하고 후퇴하게 되자 아버지 묘소를 찾아내어 묘비에 총을 난사하여 그흔적이 남아있다
그후 손자인 윤형이 국회 부의장시절 인촌공 산소가 있는 병천면 용두리 산25-1 번지로 이장하고 천원군수(현재 천안시장)가 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애국지사 묘비를 세웠다
1968년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다.
23세 독립운동가 인원 묘
아들 유석 병옥 박사가 세운 묘비
천원군수(현재 천안시장)이 세운 애국지사 묘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기념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인원의 동상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3세 독립운동가 인원의 묘소를 찾아 참초 등 주변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절효공파종회 회장 조성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