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바라보기
평화를 빕니다. 거룩한 사순시기 잘 보내고 계시는가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인연이 계속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때론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저렇네!’ 혹은
‘이 사람은 나하고 이런 점이 맞지 않아 힘들어.’ 하며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가 매번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때때로 나의 잘못된 편견이나
오해로 상대방을 바라봤던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나 스스로가 이웃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편견이 아닌,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질문은
우리의 삶 안에서 늘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숙제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는지 등 나를 먼저
바라보고 성찰할 때, 있는 그대로의 이웃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각자 자신의 말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도 마찬가지죠. 상대방의 그릇된 점을 평가하기 전에
나의 잘못된 점은 없는지 자신을 먼저 돌아본다면, 내 이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마주하고 바라보기 위해
먼저 온전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하느님을 향한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나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소중한 시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글 : 李相勳 Patrick 神父 – 광주대교구
벼랑의 끝자락에서
《그림으로 보는 복음 묵상》책에 담긴 성화로 전국 순회전을 계획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부득이하게 연기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가슴 저린 때였지요. 1년여 시간이 흐른 다음, 그동안 그렸던 주보 표지화를
비롯해 새로운 작품 몇 점과 브론즈로 만든 14처로 ‘현존’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인류 전체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고난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200명의 군상을 그리던 중 갑자기 심한 갈증과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과로와 당뇨 체질 때문일 거라 가볍게 여기며 병원에 갔는데
췌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췌장 쪽은 초기에 발견하기
힘든데 1기에 발견된 것은 행운이라고 주변에서 말했습니다. 주인공 없는
전시회는 예정대로 열리고,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안고 저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으며, 휘몰아치듯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받고 네 가지 항암제 중 마지막 주사는 44시간이나
맞아야 했습니다. 약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울렁이는 구토 때문에 휴지통을
껴안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노란 쓴 물까지 쏟아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과 외로움으로 얼마나 긴 밤들을 하얗게
보냈는지요. 12차례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던 때는 제 삶이 바닥을 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체념의 시간, 울기에도
지쳐버린 체력,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절망하며 주님 앞에 섰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제 이름을 내세운 것은 아닌지 번민했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 받기만 한 마음의 빚, 낭비, 질투, 거짓, 양심의 가책….
온갖 마음의 찌꺼기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벼랑의 끝자락에서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비우고 또 비우고,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어린아이처럼 바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 순례길을 함께했던 93세의 소티리오스 정교회 대주교님께서도
같은 시기에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그분과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아 아픈 몸을 이끌고 가평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의 고통을 떠올리며 아픔을 봉헌하고,
그 순간 주님의 은총을 체험해 보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당신과 더 가까워지라고 애타게 부르시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임은 순교의
정신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중한 말씀을 마음에 품고 링거에서
떨어지는 항암제 한 방울 한 방울을 연옥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기도 방울로 바치니 아픔이 점점 희석되어 갔습니다.
고난은 고난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픔 속에서 기쁨이
자리하는 순간 주님께서는 제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아주셨습니다. 작은
어떤 것도 예전과 달리 보이는 세상에서 감사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지금, 아픔 속에서 절망하고 계신 분들께 저의 초라한 글을 바칩니다.
글 : 정미연 아기예수의 데레사 – 聖畵 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