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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카페 게시글
강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기우 추천 1 조회 106 23.04.01 05:3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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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4.02 08:05

    첫댓글 '호산나'란 뜻이 "지금 구원하소서" 라고 합니다.
    자아의 노예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실 있는 유일한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기가 쉬운 것 같아도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가정, 교회, 사회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이 특히, 교회가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데 장벽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신부님께서 [평신도들의 교회 쇄신 의지가 생겨나야 하고, 대대적인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 같습니다.
    관료화된 한국 교회 환경에서 자발적인 쇄신이 이루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는 그런 장애물을 상관치 않고 때가 되면 우리들 각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부활절을 앞둔 주님수난 성지주일에 조합원 회원 모두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작성자 23.04.02 10:18

    ‘메시지...’방에서 두 교황님의 메시지를 읽어 보시지요.

  • 23.04.02 18:41

    @이기우 2022년 6월 교황주일에 했던 강론을 이미 읽어 보아서 이 신부님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가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표현한 점이 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사제와 신자간의 의사소통면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시노달리타스(함께 걸어가는 여정)란 개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현장에서 사제의 의사대로 모든 일이 정해지다 보니 신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해서 교리적인 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만 조정해 주는 방식으로 신자들의 자율성을 더 보장하는 방식으로 사목회등의 사목활동을 운영하였으면 합니다.복음과 공동선 4강을 찾다가 3장 강의를 다시 들었는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신앙생활입문등의 귀중한 자료 정보를 놓치지 않아 기쁩니다. 이분이 평신도를 대상으로 책을 쓰셨더군요.

  • 23.04.02 08:13

    '복음화'와 '교회쇄신'. 대외적 활동 목표와 대내적 활동 목표. 아시아 복음화의 과정 속에서 민족의 복음화와 한반도 평화는 이뤄질 것이고 교회쇄신을 위한 평신도의 노력이 필요한 때. 주님수난성지 주일.. 예수님에 대한 환호와 수난의 역사 전과정을 돌이켜 볼때 다시금 묵상해야 할 지점. 오늘 날 우리는 환호 이후 예수님께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 23.04.02 08:15


    주난 수난 성지주일

    강론
    깊이있게 잘 들었습니다.

    메시아를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리던 그들이 자신들의 뜻과 맞지않다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자태가 나의 행동이 아닌지 성찰해 봅니다.

    2차공의회이후
    1981년 조선교구 설정150년 기념신앙대회와
    1984년 천주교200주년 기념신앙대회와 시성식
    1989년 제44차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집전하신 기억의지킴이 희망의 지킴이란 주제로 124위 순교복자식도 뜻깊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4차례나 열린 한국에서의 미사는 아시아교회를 대표한 만한 위상을~~
    주님께서 주시는 메세지를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야함을 느끼지만 물질화 된 교회의 안일한 모습도 안타까운 한부분입니다.

    새롭게 쇄신 해 나가는 한반도의 교회가 다시 주님뜻에 맞갖은 아시아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도록 성주간에 깊이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분 찬미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 작성자 23.04.02 19:18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입니다. 2백여 년 전의 상황에 비하면 현재의 평신도들은 훨씬 더 나은 여건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그 처신과 노선을 주목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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