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온화함, 의로움’의 균형과 자비!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온 유대인들은
주님을 시험합니다. 이들은 “주님, 거짓된 입술에서 속임수 혀에서 제 목숨을
구하소서.”(시편 120,2) 하고 기도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하면,
‘죄를 용서하러 왔다더니, 무슨 소리요?’ 라 할 것이고,
만약 그가 ‘여자를 돌려보내 주어라.’라고 하면,
‘당신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소?’ 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거슬러 그릇되게 질문지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고발하려 했을까? 주님 안에는 굉장한 온화함이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교사로서는 진리를 가져오셨고, 구원자로서는 온화함을 가져오셨고,
변호자로서는 의로움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분의 통치에는 이 세 가지가 다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서는 진리가 인지되었고, 원수들에게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시며 온화함이 넘치셨습니다. 그들은 이젠 의로움에
걸림돌을 놓아 그분을 넘어뜨리려 궁리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온화함을 잃지 않으시며 의로움을 지키는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혼란에
빠져 서로 마주 보지도 못하며, 나이 많은 자부터 하나씩 모두 떠나갔습니다.
이 얼마나 의로움으로, 온유함으로, 진리로 가득 찬 답변입니까?
파렴치한 자들 앞에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당신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어 그들에게 달아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먼저 돌을 던져라.” 하신 대답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리라는 것을
아셨을 주님이십니다. 당신의 뜻을 밝히기 전과 뒤에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겸손한 자기성찰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들고 여자를 쳐다보며
“여인아,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물으십니다.
여자는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고발하며 용서받을 자격을 얻습니다. 곧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알며,
제가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께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제가 죄 있음을 알고,
당신께서 자비로우신 분임을 압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께서는 ‘진리, 온화함, 의로움’으로 단죄가 아닌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주님께 자비를 얻고, 주님처럼 세 가지의 덕을 균형 있게 살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글 : 安載玄 사도요한 神父 – 대전교구
나는 입주민의 기쁨조
67세에 복합 상가 빌딩 지하 주차관리원으로 취직했다.
벼룩시장 紙를 정독하며 천신만고 끝에 구한 직장인만큼
오랫동안 근무하기 위해 나름대로 근무 수칙을 정했다.
첫째, 입주민 전부가 고객이다.
내 급료가 입주민 관리비에서 지급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둘째, 입주민에게 절대 화내지 말자. 늘 존중하는 마음을 갖자.
셋째, 입주민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 전도사가 되자.
나를 대면하면 고객이 기뻐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고객이 주차할 때 가까이 다가가 칭찬 한마디 하면 된다.
주차 선에 단번에 주차하면
“아휴, 주차실력이 대단하십니다. 단번에 하셨네요.”
미장원에 다녀온 것이 분명한 여성 고객에게는
“사모님 헤어스타일이 바뀌셨네요.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눈에 띄는 옷을 입었으면 남녀 불문하고 꼭 한마디 한다.
“옷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차에서 짐을 내리면 작은 짐이라도 들어주고 무거운 짐은
꼭 엘리베이터 앞까지 날라준다.
한번은 상가 여자 학원장 차량 앞 유리창에 ‘주차금지’라는 붉은 딱지가
본드로 달라붙어 있었다. 남의 아파트에 방문했다가 그렇게 됐단다.
붉은 딱지가 눈에 영 거슬렸다.
딱지를 물에 흠뻑 적신 뒤 칼과 수세미로 밀자 금방 깨끗해졌다.
장난기가 발동해 차의 전면 사진을 찍어 카톡을 보냈다. 금방 답이 왔다.
“주차 아저씨, 제가 주차를 잘못했나 보죠?”
“아뇨, 원장님 차량 유리창이 갑자기 깨끗해졌네요.”
“으악, 아저씨 고마워요. 이를 어쩌죠?”
“아뇨, 원장님! 고운 얼굴에 티가 묻은 것 같아서 제거했을 뿐이에요.”
“아저씨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원장은 이튿날 출근하면서 떡을 사가지고 와서 ‘정말 감사하다.’ 인사했다.
감사하고 기뻤던 것은 원장보다 내가 더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생각에는 너무나 간단하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면 그 기쁨이 몇 배가 되어 돌아온다.
폐지 수거 할머니에게 마대에 소주병만 모아 한 포대씩 드리면
할머니가 너무도 좋아해 내가 더 행복하다.
내 정성만큼 고객은 행복해하고 그 행복 이상으로 내 기쁨이 더 커진다.
출근길에는 항상 가슴이 설렌다.
‘오늘은 어느 입주민에게 환한 웃음을 웃게 해드리지?’
어느 날 한 여성 입주민이 물었다.
“저번 아저씨는 화를 자주 내 참 힘들었는데
아저씨는 어떻게 화 한번 안 내고 항상 웃으세요.”
“아 네, 저는 입주민의 기쁨조입니다.”
내 사무실에는 입주민들의 정성 어린 선물이 끊이질 않는다.
텃밭에서 수확했다는 고추, 고구마, 감, 상추 등 다양하다.
음료수는 항상 냉장고에 넘쳐난다.
커피 한 잔도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으니 행복하기만 하다.
선물을 배낭에 넣어 집에 가면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나 또한 마냥 기쁘고 행복할 뿐이다.
글 : 이상재 – 경남 양산 ․ 주차관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