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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12.12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하나회가 재조명된다. 그런데 국군의 군사작전지휘권을 쥔 주한미군 사령관은 당시 뭘 하고 있었는지에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다.
영화에서는 노재현 국방부 장관(배우 김의성)이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숨어 있다 돌아와서 전두환 하나회의 쿠데타를 지지한 것으로 아주 짧게 묘사돼 있다.
군대를 쿠데타에 동원하려면 군 최고 지휘권자의 명령 또는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전방에 있던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이 육군본부를 점령하는 동안 군사작전지휘권을 가진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군 사령관은 그 시각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훗날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된 날,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정희 피살 이후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한국 정책 가운데 하나는 전두환 정권의 수립이다.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보람도 크다.”(1980. 8. 27.)
10.26 박정희 피살과 미국
위컴 사령관은 박정희 피살 이후 전두환 정권 수립이 미국의 정책이었다고 밝혔다. 사실 미국은 박정희 피살 가능성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박정희 피살 하루 전인 1979년 10월 25일 직전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존 베시 미 육참 차장은 “만약 한국에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해도 한미관계에는 변화가 없다”라며 박 대통령의 부재를 암시했다.
또한, 피살 5일 후인 10월 31일,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정희의 후계자를 선정할 때 미국에 상담을 요청하면 주저하지 않고 의견을 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내정간섭 의사를 밝혔다.
미 군부의 이런 인식이 반영돼서일까, 위컴 사령관은 “한국인은 ‘들쥐’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따를 것”(1980년10월, 뉴욕타임즈 인터뷰)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정희 피살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막지 않고 방조한 미국은 47일 이후 벌어진 12.12쿠데타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12.12쿠데타와 주한미군
주한미군이 12.12쿠데타에 개입했다고 보는 핵심 근거는 국군에 대한 군사작전지휘권을 그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작전지휘권은 작전통제권, 전투 편성, 임무 부여, 임무 수행에 필요한 지시 권한으로 분류된다. 이중 전두환 같은 일선 군 지휘관이 부여받을 수 있는 권한은 고작 ‘임무 수행에 필요한 지시 권한’ 정도다.
그러니 군단장, 사단장 등 국군 장성이 “1‧5공수여단은 전투태세를 구축해 서울로 이동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며, 9사단(사단장 노태우) 병력은 중앙청으로 진입하라”고 명령할 독자적인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12.12당일 1‧5공수와 9사단을 움직이는 계획에 누가 최종 승인했을까?
당연히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만약 위컴 사령관의 승인 없이 군대를 움직였다면, 한미연합사 소속 20사단이라도 출동해 그들을 막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주한 미 8군은 12.12쿠데타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두환과 하나회는 위컴 사령관의 승인에 따라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정우성 역)이 쿠데타 진압에 병력을 요청했지만, 9공수여단 등이 이에 응하지 않은 것도 같은 까닭이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당시 권한 있는 자(작전통제권을 가진 자)의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반란군 진압에 병력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12·12쿠데타 직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는 미국 정부에 보고한 전문을 통해 “사건의 정확한 실체가 무엇이든 현 정부의 구조를 기술적으로 적절히 존속시켰기 때문에 고전적인 의미의 쿠데타로 발전하지는 않았다”라고 기술했다.
이는 전두환 하나회의 반란이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책이나 정체성을 부인하는 쿠데타가 아니라, 단지 원조 군부의 권력을 신군부가 인수하면서 발생한 통과의례이므로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두환의 공수여단 투입 요청을 승인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작전통제권은 여전히 주한미군 사령관이 가지고 있다.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반환됐지만, ‘서울의 봄’처럼 계엄상태에는 데프콘 3단계가 발령되기 때문에 작전권은 다시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넘어간다.
‘서울의 봄’ 영화 감상평 중에 “전두환이 나쁜 놈이지만, 배포는 정말 커 보인다”는 언급이 더러 있다. 하지만, 군사지휘권을 가진 미군의 뒷배 때문이지, 결코 인간 전두환의 깡이 셌기 때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