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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유력한 차기대권주자에 대한 최초의 암살시도는 1956년 당시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입니다.
195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정부통령 후보인 신익희-장면 후보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대표되는 대단한 야당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만 선거를 열흘 앞두고 신익희 후보가 아쉽게도 급서합니다.
급서한 신익희 후보에 대한 아쉬움은 장면 후보에 대한 몰표로 나타났고 갖은 부정 선거시도에도 불구하고 장면후보는 이기붕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시 헌법에서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시 승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승만은 80이 넘은 고령이었기 때문에(당시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거의 100세에 도달한 것이죠), 자유당 입장에서 장면은 가장 위협적인 야당의 대권주자였죠.
그런데 1956년 9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장면 부통령에 대한 권총 저격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손을 관통하는 데 그쳤죠.
당시 저격범은 저격 후 '조병옥 박사 만세'를 외쳤고(당시 민주당의 양대 계파는 구파와 신파였고, 조병옥은 장면의 신파와 경쟁하는 구파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과 자유당은 이 저격사건을 민주당 내 신-구파 갈등의 결과로 규정지으려 했습니다.
정확한 진상은 4. 19를 거치고 자유당 몰락 후 밝혀졌는데요. 저격범의 직접적 배후는 자유당의 중진이었던 임흥순이었고 다시 그 뒤에는 이기붕이 있었습니다.
2024년 1월 2일의 이재명 대표 암살시도를 대하는 경찰과 여당의 행태는 67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