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사도 18,9-18; 요한 16,20-23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2023.5.19.;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근심과 부활의 기쁨에 대한 예수님의 예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복음을 전하던 상황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환시를 통해 사도 바오로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 18,9-10). 그 당시 코린토는 항구도시로서 매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지중해문화권을 제패한 세력은 로마제국이었으나 물산과 인구는 동방에 몰려 있었으므로 동방의 풍부한 물산이 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모였다가, 로마로 실어갈 때 바람의 힘과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운행하던 비동력선의 특성상 노젓는 일꾼들이 쉬어야 했던 길목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중간기항지로서 코린토에 들러야 했고 그 기회에 물자 교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유한 만큼 도덕적 타락상도 심했고, 이는 당시 고대 그리스에 만연되어 있었던 다신교의 우상숭배 풍습에 따라 행해졌습니다.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던 로마제국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기원전 10~54년)가 로마에서 유다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칙령을 발표하여 로마에 살던 유다인들을 추방했고(49년, 사도 18,2) 이에 따라 로마에 살던 2만 5천명의 유다인도 코린토 등지로 이주했는데, 이 타락상에 노출된 이 유다인들도 상당수가 물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2차 선교여행은 키프러스와 소아시아 남부 해안지방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1차 선교여행 당시에 복음을 전했던 곳을 둘러보기 위함이었고, 그 종착지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였습니다. 여기까지 둘러본 사도 바오로는 그 당시 소아시아 로마 속주의 수도로서 가장 번창하고 인구도 제일 많았던 에페소로 진출하여 선교하고자 하였으나,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사도 16,6) 트로아스항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건너갔던 것이고, 이 그리스에서 필리피와 데살로니카에 복음을 전한 후 박해를 피해 코린토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코린토를 위시한 그리스 지역에 성행하던 다신교 우상숭배 풍조는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코린토에서 선교하기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바오로에게 예수님께서 그 도시에 당신 백성이 많으니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하셨던 것이었고, 그는 여기서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사도 18,8). 그리고 이후 코린토를 비롯하여 그리스에 전해진 복음은 로마를 거쳐 온 유럽을 그리스도교화시키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대륙별 주교 시노드 가운데,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지난 2천 년의 복음화 역사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전망하였습니다: “제1천년기에는 십자가가 유럽 땅에 심어지고, 제2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심어졌던 것처럼, 제3천년기에는 광대하고 생동적인 아시아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갈 것입니다”.(교황권고, ‘아시아교회’, 1항).
2천 년 전 사도 바오로가 활약하던 고대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교회가 출현한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고, 당시 문명의 중심이 로마였으며, 로마제국이 다스리던 영토 안에서 다신교의 우상숭배 풍습이 만연하고 있었던데다가 무력통치에 의한 죄악이 극성을 부렸으므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예수님의 복음을 서진하여 전해야 했던 불가피했던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시작되었던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고,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며, 고대 문화와 종교가 발생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아시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착취로 억압받고 있습니다. 2천년 전 그리스와 로마, 유럽이 세상의 죄악이 극성을 떨치고 있었듯이, 오늘날의 아시아도 비슷해서 복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6세기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처음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한 이래, 아시아의 복음화는 지지부진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서양의 성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회 또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하던 서양 세력의 배후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는 아시아에서 서양 종교로 간주되어 있으며, 가톨릭 신자 비율은 고작 3% 미만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주교들과 함께 아시아의 복음화라는 거대한 사명에 직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이시기도 하신 분, 모든 제자의 모범이시며 복음화의 빛나는 별이신 마리아께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에서 아시아 교회를 맡겨드리는 기도를 남겼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딸이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 아드님께서 아시아 땅에 심으신 교회를 자비로이 돌아보소서. 또한 교회가 아시아에서 당신 아드님의 봉사와 사랑의 사명을 지속하도록 그 모범과 길잡이가 되어 주소서. … 아시아인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 자녀들인 저희를 위하여 이제나 언제나 빌어주소서!”(아시아교회, 51항).
교우 여러분, 일찍이 2천 년 전에 코린토를 시작으로 그리스와 유럽에 복음을 전하려던 바오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여라.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사도 18,10)고 말씀하셨고,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요한16,2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아에는 그리스도인이 적지만 복음을 들어야 할 하느님 백성은 무수히 많습니다.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이 근심을 우리가 기쁨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