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장 16절 17절 18절
O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내 손에 있는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서 내가 너를 보내는 모든 민족들로 마시게 하라. 15)
For thus saith the LORD God of Israel unto me; Take the wine cup of this fury at my hand, and cause all the nations, to whom I send thee, to drink it. 15)
그러면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가운데 보낼 칼을 인함이라. 16)
And they shall drink, and be moved, and be mad, because of the sword that I will send among them. 16)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개역개정 예레미야 25장 16절
내가 그들 가운데 보낼 칼로 인하여 그들이 마시고 움직이며 미치리라. 하시기에
킹제임스 흠정역 예레미야 25장 16절
말씀보존학회의 칼을 인함이라는 번역이 어색합니다. 이런 표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찾아보니 개역개정 성경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라고 나옵니다. 오히려 개역개정은 보냄을 있어서 덜 어색합니다.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구약번역은 이상하게도 개역개정과 유사한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위 예레미야 25장 16절의 번역은 개역개정보다도 더 퇴보하였다고도 느껴집니다.
지난번에도 지적한대로 이송오목사는 신약과 달리 구약을 번역하면서 개역개정에서 조금 교정하는 정도로 번역작업을 하였다고 느껴집니다. 이 문제는 킹제임스성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의 영역이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며, 킹제임스 흠정역처럼 고민하고 수정하고 다듬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말씀보존학회가 자신들의 번역 성경을 유일주의로 자신들의 번역에 권위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보존학회의 성경을 권유함에 고민이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문제는 이렇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진노의 포도주잔과 칼은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칼은 말씀이며, 진노의 포도주잔은 그 말씀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심판인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이나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함은 그들이 주께로 돌이켜 구원받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들이 공의로운 심판에 이르도록 함이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말씀이라는 칼을 건네는 것과 같고 그가 말씀이라는 칼을 알고도 세상에 취하여 비틀거림은 곧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게 되는 것이 공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짐승의 표에 대해서 알고 있고,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에 대한 주의 말씀을 확인까지 시켜주며 속였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창세기 3장 1절
그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
창세기 3장 4절
그러므로 짐승의 표도 온전한 심판을 위하여 말씀에 인내하라고 기록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셋째 천사가 그들을 따라가며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 경배하고 그의 표를 자기 이마나 손에 받는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리니, 그것은 그의 진노의 잔에 혼합하지 않고 부은 것이니라. 또 그 사람은 거룩한 천사들의 면전과 어린양의 면전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 고 하더라.
요한계시록 14장 9절 10절 11절 12절
창세기에 나오는 옛뱀의 말을 짐승의 표에 적용하여 보면
"성경의 말씀에 짐승의 표를 받으면 영원한 고통에 빠진다고 하시더냐? 너희가 반드시 영원한 고통에 빠지지는 아니하리라."
라고 말하며 짐승의 표를 권유하고 압박하고 강제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속임수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마자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지금의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 중에 반드시 고통속으로 가지 않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도 당장은 아무런 고통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대로 사람은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그대로 이루어져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처럼 짐승의 표도 그것을 받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영원한 고통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와 대칭이 되는 짐승의 표도 반드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받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백신과 조금 다른 점입니다. 백신은 그냥 속였습니다. 백신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모형이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짐승의 표에 대한 지식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심판이전에 주어지는 칼을 받는 것입니다. 그 칼을 보고 깨달아 주의 뜻에 굴복하면 살 것이고, 거절함은 곧 자신의 주인됨으로 살아나가려 함입니다. 자신의 주인됨은 좋은 것이 아니며 모든 죄의 문제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일입니다.
백신사기극에서 보듯이 그 사람이 서울대를 나온 의사도 백신을 접종 받았습니다. 이러한 분별은 지식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지능은 일부분으로 영적인 영역에 미치지 못하여 그 능력이 매우 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습을 깨닫는 다면 이제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우리에게 닥칠 고난의 때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손에 있는 잔을 가져다가 주께서 나를 보낸 모든 민족들로 마시게 하였으니 17)
Then took I the cup at the LORD'S hand, and made all the nations to drink, unto whom the LORD had sent me: 17)
위 말씀의 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험입니다.
다시 두 번째로 가셔서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시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42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마신 잔은 우리의 죄로 우리가 마셔야할 잔이었습니다. 예레미야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 그 잔은 곧 이 민족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잔의 결말은 우리에게는 지옥이 됩니다. 우리가 잔을 마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도 고통속에 살다가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파멸과 경악과 경멸과 저주가 되게 함이 오늘과 같으며 18)
To wit,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and the kings thereof, and the princes thereof, to make them a desolation, an astonishment, an hissing, and a curse; as it is this day; 18)
심판이란 우리의 육이 죽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백신사기극에 있어서 지위 고하와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배움이 높은 자와 무학인 자 모두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의사건 건물주이건 서울대를 나왔던 간에 모두 백신사기극에 속아서 독을 자기 몸에 스스로 주입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 세상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땅의 지식은 풍부할 수 있으나 영적인 지식이 없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들이 어둠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들이며 낮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 ~6절
위의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보면 빛과 어두움의 공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주변에 나타난 현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똑똑한 사람에게 백신에 대한 진실을 설명해도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어두움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지막의 날의 날과 시는 우리가 알수 없으나 그 때가 이르렀음은 빛의 자녀들은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속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백신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겪는 현상이 바로 빛과 어두움의 경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어두움은 빛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러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많은 접종자들이 변명하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바로 어두움이 어두움으로 물러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어두움속에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하여 부딪힙니다. 우리가 백신접종자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이런 장면에 마음이 아파하는 것입니다. 백신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본편인 짐승의 표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