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수채화를 그리다
/문인규
물장난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은 발이 퉁퉁 부어도 아랑곳없이 신이 났다. 그러다 거센 물에 신발이 떠내려가기도 했다. 나와 동생도 슬리퍼와 고무신을 여러 번 떠내려 보내고 꾸중을 들었다. 신발뿐만 아니라 불어난 물에 빨래하던 옷이나 걸레가 떠내려가기도 했다. 물살에 흽쓸린 물건을 잡으려고 뛰어보지만 웬만해선 회수하기 어려웠다. 떠내려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잡지 못해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우물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되었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혼날까 봐 엉영 울었던 나는 지금 여기 다시 서 있는데 나를 혼내던 엄마는 가시고 없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도 없다. 생전에 잘못한 기억에 자책만 늘어난다. 그리움은 늘 아쉽고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움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리워하는 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했다는 것이고 그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움은 사랑이었고 삶의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친구의 집 부근이라고 했는데도 도착이 늦어지자, 친구가 나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여기에 텃밭이 있었고, 저곳에 빨랫줄이 있었고, 엄마는 이 자리에서 텃밭의 채소를 다듬었다고 말해 주었다. 옛집 마당에 널린 빨래가 유난히 눈부시게 하에서 가끔 세탁 방법을 물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덕택에 엄마는 더욱 빨래의 고수가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까비" 친구는 신기해하며 그렇게 멋진 집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콧소리를 한다. 그 모습이 천진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옛날 살았던 동네는 얼마 전까지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이사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 주었다. 한 번쯤 다녀가라는 무언의 이끌림처럼 왔다. 어린 날 떠내려가 버린 고무신 처럼 엄마는 이곳엔 없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기억이 아련하면서도 흐뭇했다. 이별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리움은 영원한 사랑으로 내 곁에 남았다.
비 내리는 날 그리움이 그린 한 폭의 수채화는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연둣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