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소금, 세상의 빛
2코린 1,18-22; 마태 5,13-16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2023.6.13.; 이기우 신부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어 땅을 썩지 않게 할 것과 빛이 되어 세상을 어둡지 않게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땅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기와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밝음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제자들의 공동체인 우리가 짠 맛을 머금을 수 있고 밝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인호를 찍어 놓으셨고 성령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군중에게 먼저 소금과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세상의 죄악에 반대하며 마귀를 물리쳐서 소금기를 주셨으며,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서 밝음을 주셨습니다. 오늘날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로 오시어 소금과 빛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금기와 밝음을 주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세상의 죄악을 분별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며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은 십자가까지도 짊어짐으로써 세상의 죄를 없애버릴 수 있는 짠 맛의 힘은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러자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우상 숭배적 요소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하며, 거룩한 용기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쾌락과 이익을 미끼로 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할 때, 단호하게 이를 끊어버릴 수 있는 분별력과 용기가 여기서 나옵니다.
이것이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소금의 역할이라면, 하느님께 대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빛의 역할은 우선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신앙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종교인들이 줄어들고 냉담자들이 늘어나며 남아 있는 신앙인들 가운데에서도 기복신앙에 머무는 이들이 많다는 교회 언론의 보도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부활 신앙에서 결판납니다. 부활을 믿는 마음, 부활을 알아보는 눈, 부활을 살고자 하는 깨끗한 용기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패를 예방할 수 있는 땅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어둠을 비출 수 있는 하느님의 빛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복음선포요 예수 성심을 본받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세우셨고, 당신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라고 밝히셨고, 목마른 사람은 누구나 당신께 와서 값없이 생명의 물을 받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빵도 물도, 성체도 성혈도 똑같이 예수님의 생명을 주는 것이요 성령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성체는 배고픈 수많은 이들이 먹어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생명의 빵이요, 성혈 역시 목마른 이들이 값없이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펜데믹 사태가 3년 정도 지속된 후 그렇지 않아도 세례자의 80%에 이르렀던 냉담자가 90%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 중 열에 한 사람 꼴로 남은 셈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양적 규모를 중시하는 눈으로 보면 재앙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질적 수준을 중시하는 눈으로 보면 축복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을 질적으로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행사보다는 소규모 모임이나 피정, 내적 성숙을 위한 신앙 상담과 영적 독서 등의 기회가 바람직합니다.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활용하면 두고두고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메시지를 받을 수도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백년 박해가 불어 닥쳤을 때 전체 인구 2천만 명 가량이었을 무렵 천주교 신자들은 겨우 2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교우들은 전국에 산재한 교우촌에서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가족이 모여 기도하고 주일에는 공소에 모여 공소예절로 주일을 지내면서 기도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으로 결실을 나누었던 공동생활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다가 포졸들이 들이닥쳐 체포되면, 관아에 끌려가서 문초를 당하고 고문도 겪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신앙의 진정한 목표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천국이었기에, 지상에서 천국을 맛본 신자들은 부당하고 불의한 박해에 굴복하기보다는 내세에서도 천국의 삶을 갈망하였습니다.
그러했기에 부패하고 타락한 조선 왕조의 권력이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씨를 말려버리려고 모진 박해를 백 년 동안 가했어도 신자들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던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의 가치는 이렇게 해서 얻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마음 놓고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된 신앙의 승리가 그 열매입니다.
암울하기만 한 정치 현실과 무신론 풍조가 팽배한 사회 현실이 오히려 남은 신자들의 신앙이 더욱 불타오르기를 재촉합니다. 믿을 수 있는 자유, 기도할 수 있는 기쁨, 공동체를 이루어 성사를 배령하고 서로 섬기고 나눌 수 있는 행복, 게다가 세상의 부패한 사정을 더 이상 부패하지 않도록 막고 진리를 모르는 어둠을 밝게 만들 수 있는 시절이 지금입니다. 교우 여러분! 땅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는 신앙 공동체는 산 위의 마을과 같아서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빛이 쉬는 교우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하고 의로운 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