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꽃 무궁화의 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 라네
너도 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내 땅 빛내자 조국
아름다운 이강산 무궁화 겨례
서로손 잡고서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은 무궁화다
무궁화 노래가사를 들어보면 구구절절 애국에 대한 충성심이 심어져 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 꽃이 피어난다
한국이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이날을 무궁화의 날로 정한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나라사랑 무궁나라 어린이 기자단’이다.
이들이 중심이 돼 2007년 8월 8일 무궁화의 날을 선포한 지 어느덧 16년째.
그럼에도 무궁화의 상징과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어가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겨레의 꽃으로 받아들여 예부터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왔다.
고문헌에는 우리 민족이 고조선 이전부터 무궁화를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조선에서도 과거 급제자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머리에 쓰던 어사화 장식에
무궁화를 달았을 만큼 귀한 꽃으로 대했다.
무궁화는 전통적으로 약재로도 사용했다.
<동의보감>은 “무궁화의 약성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과 사혈을 멎게 한다”
<본초강목>은 “여인의 적대하증 백대하증 치료, 종기 통증 치료, 치질 치료 등에 좋다”
현대의학과 화장품업계에서도 무궁화 추출물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한자로 무궁화(無窮花)는 ‘쉴 새 없이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꽃’이라는 의미다.
무궁무진하게 꽃을 피운다 하여 무궁화(無窮花)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다.
한 무더위 속에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요.
초 7월부터 늦가을 10월까지 100여 일 동안 수천송이의 꽃이
매일같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기를 반복하여
한 그루에서 3000송이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쌍떡잎식물로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관목이며,
온대 지방에서 자라는 2~4m의 아담한 관목으로 정원수나 울타리로도 이용된다.
가지를 많이 치고 꽃도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으로 다양하다.
종류만 200여 종이다.
애국가 후렴구에 4번‘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가면서
사실상 겨레의 꽃이자 나라꽃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국민이 나라 잃은 설움을 무궁화에서 위안받고 구국의 용기를 얻기 위한 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기를 게양하는 깃대의 깃봉으로 무궁화 꽃봉오리를 사용하거나
국가의 공문서와 휘장, 대통령 관저 등 많은 곳에 무궁화꽃이 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도 무궁화 훈장이다.
무궁화에 대해 이론적 바탕을 마련하고 법제화하는 데는 여전히 소홀하다.
경기 여주의 콜마 무궁화역사문화관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무궁화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2022년 9월 세웠다.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무궁화의 가치와 문화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한 것이다.
고조선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훈화초, 근화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무궁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무궁화를 사랑한 독립운동가와 전문가들의 역사적,
생태적 정보와 동전이나 지폐, 우표 등에 상징 문양으로 사용한 근현대 무궁화 유물도 찾아볼 수 있다.
독립운동의 상징이던 무궁화의 흔적을 복원했고 5년간 수집한 각종 무궁화 자료도 전시했다.
여주아카데미 뒤편에는 무궁화동산과 묘목장을 꾸며 총 700그루의 무궁화나무도 심었다.
그러나 몇몇 개인의 노력만으로 무궁화를 지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부에선 무궁화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 무궁화에 대해 불온한 소문을 퍼트린 일제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구전되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독립운동가들이 무궁화를 아낀다는 이유로 일제가 낸 소문이었음을 모르는 이가 많은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무궁화 관련 인문·사회 분야 연구와 법적 기반을 국가 주도로 마련해야 한다
기원전 4세기경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산해경(山海經)》1) 에는 무궁화로 짐작되는
‘훈화초(薰華草)’가 군자의 나라인 우리나라에 자란다고 했다.
우리 문헌에도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 ‘근화지향(槿花之鄕)’이란 말이 들어 있다.
《산해경》의 기록대로라면 당시는 삼한시대일 것이고,
또 최치원이 국서를 보낸 시기를 따져보면 1천 년 무궁화가 자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궁화'로 불리기 시작한 조선시대 이전에는 목근(木槿) 또는 목근화(木槿花)라 불렸다고 하며,
무궁화의 영어이름은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으로 ‘샤론 평원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평화의 꽃이다
무궁화는 학명 Hibiscus syriacus의 종소명 '시리아쿠스'에서 알 수 있듯이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뜻이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가 아닌 중국과 인도라는 주장이 대세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국에 다양한 종들이 심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무궁화의 정확한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 자라던 무궁화이지만 원산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학명의 종명에 중동의 시리아를 뜻하는 ‘syriacus’가 들어 있으며,
최근 그리스에서 무궁화 꽃을 새긴 은전이 발굴되어
시리아를 포함한 중동이 원산지라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또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장맛비 속의 망천장〉이란 시에는
“녹음 짙은 숲엔 꾀꼬리 소리가 들려온다/산속에서 조용히 수양하며 무궁화를 감상하고”
무궁화가 중국 땅의 숲속에 자연 상태로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니
중국 남부 원산지설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우리나라 안에 자연 상태로 분포하는 자람 터가 발견되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한반도가 원산지라는 주장도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꽃잎을 돌돌 말아 닫고 지는 특성 때문에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문일평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한 인의 원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 준다"고 예찬했다.
민족의 얼과 일편단심 충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을 때는 반드시 근역(槿域)이라 하였다),
“목근화(木槿花), 근화(槿花), 순화, 훈화초(薰華草) 근화향(槿花鄕)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이 꽃은 피기 시작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피고 지는데/
사람들은 뜬세상을 싫어하고/ 뒤떨어진 걸 참지 못하네/
도리어 무궁이라는 이름으로/ 무궁(無窮)하기를 바란 것 일세"
겸양과 자중의 꽃,민족의 얼과 일편단심 충절을 나타내는 나라꽃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자 (무궁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