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유래와 혁신
창세 22,1-19; 마태 9,1-8 /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2023.7.6.; 이기우 신부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양을 태워 바치는 번제(燔祭)가 생겨난 기원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던 데에서 비롯하였습니다(창세 8,20).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사의 또 다른 기원을 알게 해 줍니다. 당시 우상숭배에 물든 이민족들은 전쟁 포로나 사회적 약자의 아기들을 불태워서 제사를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몹쓸 제사 풍속을 없애시고자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백 살에 얻는 귀하디 귀한 아들 이사악을 당신에게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해 본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이 필요하기도 하셨겠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 정작 더 중요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형식을 올바르게 가르쳐주는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칼로 찌르려던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말리시고는 근처에 있던 양 한 마리를 잡아서 바치도록 명하셨습니다. 즉 짐승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 곧 번제의 기원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려던 동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인신공양을 근절시키려던 동기가 더 컸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천 년 이상 2천 년 가까이 내려오던 번제의 제사 풍속을 예수님께서는 더욱 근본적으로 혁신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애 전부를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로 삼으심으로써 아예 제사적인 실존을 사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제사적 실존을 통째로 마무리하는 의미로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제사를 기억하여 계승하는 미사는 그냥 제사가 아니라 ‘미사 성제(聖祭)’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대사제로 인정하는 히브리서가 서기 1세기 경에 쓰여질 무렵에 이러한 확신이 초대교회에 널리 펴졌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몸을 단 한 번 바치셨고 이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4.10). 이것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인격적 제사, 즉 미사성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제사적 실존의 주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용서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끼리도 서로 서로 죄를 짓고 삽니다. 그렇게 되면 죄로 인한 상처와 원한과 복수심 등 악한 마음이 꼬일 대로 꼬인 결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각종 갈등과 질병과 정신 질환 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엉켜 있는 매듭을 풀어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은 탓으로 걸리는 병으로 알려져 온 중풍 병자를 말씀 한 마디로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ㄷ)고 하신 말씀입니다.
용서하는 삶은, 용서를 청하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적 실존입니다. 하느님과 소통하는 삶이 영혼에 생기를 줍니다. 용서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의 가르침 중에 이렇게 가르치신 바가 있습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그러니까 용서와 화해는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제사의 내용을 거룩하게 승화시킬 수 있는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이 땅에 들어온 초창기에 부딛혔던 시련이 이 제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790년 경 북경 구베아 주교가 전해준 교황청의 조상제사금지령이 백년 박해의 빌미로 작용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행해지던 조상제사에는 두 가지 성격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 대신에 조상신에게 제사를 바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들은 조상신을 모신다기보다는 조상을 공경하고자 했던 윤리적 동기에서 조상제사를 모셔왔었다는 점입니다. 교황청에서는 전자를 문제삼아 금지령을 내린 것이었고 진산사건으로 일어난 신해박해 당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등은 이에 따라 조상신 대신에 천주교 식으로 모친상을 치루었다고 해서 치명을 해야 했지만, 조상제사금지령에 반발하여 배교자로 낙인찍힌 이승훈 베드로나 정약전 안드레아와 정약용 요한 등 보유론적 입장으로 신앙을 받아들였던 초창기 천주교 선각자들로서는 후자에 따라서 현지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았음은 물론 당사자들과 아무런 대화도 없이 느닷없이 내려진 이 조상제사금지령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을 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후 교황청에서는 동아시아에서의 조상제사 풍속이 지닌 후자의 의미를 알게 되어 1939년에 조상제사금지령을 철회하였습니다(비오 12세,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 그렇다면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교황청의 일방적인 조상제사금지령에 반발하여 배교자로 몰린 신앙 선조들의 명예도 원인무효와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서 회복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보편교회임을 자처하는 가톨릭교회로서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아시아 복음화와 이를 위한 교회 쇄신 또 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평신도 사도직의 주체성 회복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