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 미칩니다”(루카 1,50)
지혜 12,13.16-19; 로마 8,26-27; 마태 13,24-43
제3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연중 제16주일; 2023.7.23.; 이기우 신부
1. 전례의 취지와 말씀의 흐름
연중 제16주일인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한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밀밭에 숨어 들어온 가라지는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밀과 가라지가 확연하게 구별되는 수확 때에 밀은 거두어서 곳간에 모아 들여 양식으로 삼고, 가라지는 태워서 밀로 음식을 조리할 때 땔감으로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3,30). 제1독서인 지혜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신다.”(지혜 12,16)고 하였습니다. 제2독서인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신다고 상기시키면서, 그 이끄심에 따라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로마 8,26).
2. 교황의 취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3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발표한 담화의 주제는, “하느님의 자비는 대대로 … 미칩니다”(루카 1,50).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여 식별하고 때를 기다려 가라지를 밀을 조리하는 땔감으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어느 한 개인에게 느닷없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와 부모를 통해 세세대대로 물려받은 영적인 통공의 환경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즉,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와 기도를 통하여 그분의 영을 받아서 조명되고 인도받은 통공의 기운이 가정이라는 사랑과 생명의 환경에서 그것도 조부모와 부모를 통해 대대로 안정되게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서에 나오는 훌륭한 가정들과 만남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3.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성령의 기운을 받아 구세주를 막 잉태한 젊은 마리아와, 늘그막에 역시 같은 성령의 기운으로 구세주의 예언자를 여섯 달 전에 잉태하고 있던 엘리사벳 사이의 복된 만남(루카 1,39-56 참조)을 되새겨보게 해 줍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엘리사벳은 구세주의 어머니로 간택된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하였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4. 하느님의 자비는 대대로 미치십니다
이 당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했음을 알고 가장 먼저 엘리사벳에게 알리려고 달려온 참이었는데, 자초지종을 알리기도 전에 엘리사벳은 전후 사정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감지하고 이 같은 인사말을 건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다.’는 뜻밖의 그리고 최상급의 인사말을 들은 마리아께서도 성모 찬송으로 화답하셨으니, 그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습니다. 과연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치십니다”(루카 1,48-50). 즉, 마리아의 응답에 담긴 신앙과 안목은, 즉 구세주를 잉태하게 된 은총은 이미 세세대대로 조상들 시절부터 하느님을 섬겨온 아나빔들 즉 하느님을 경외해 온 신앙인들이 신앙을 보전하고 물려주며 대대로 경건한 가문 전통을 영적으로 보전해 온 덕분이라는 뜻입니다.
5. 하느님의 선과 세상의 악을 식별하는 안목
밀과 가라지를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은 하느님의 선과 세상의 악을 식별하는 안목입니다. 거룩함과 속됨, 참됨과 거짓됨을 구별할 줄 아는 이러한 안목은 당대에 개인 차원에서 기를 수 없는 소양입니다. 경건한 유다인 가정에서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어린이에게 가장 먼저 읽도록 가르치는 책이 레위기라고 합니다. 이 성경 책 속에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떠받들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 또 이를 온갖 속된 것들 가운데에서 성별해 내는 방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같은 성령께서 서로 다른 세대 곧 조부모와 손주,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모든 풍성한 만남을 축복하고 그 만남에 동반하시며, 하느님의 백성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 문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선을 밀로 알아보고, 세상의 악을 가라지로 식별해 낼 수 있는 안목을 신앙이라 합니다. 이 신앙은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와 부모의 신앙을 통해 가정에서 형성된 전통으로 터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신앙의 안목은 취미생활처럼 하는 신앙생활에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고 가문의 문화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가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주어서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안목이 몸과 마음에 배이도록 배려해야 하는 참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배려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가정에서 소홀히 되고 있습니다.
6. 노인의 경험, 젊은이의 가능성
하느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내리시는 거룩함의 영은 이를 체험한 노인 세대의 경험에 기반하고, 젊은 세대의 가능성에 힘입어 대대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한 것처럼 젊은이들이 노인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고 노인들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주님께서는 우리 시대에 불행하게도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우리가 노인을 유기하거나 그들을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 세계청년대회와 가까운 날에 거행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두 거행 모두 우리에게 마리아가 엘리사벳 방문을 위하여 길을 나선 ‘서두름’(루카 1,39 참조)을 상기시킵니다. 그럼으로써 젊은이와 노인을 잇는 유대에 관하여 성찰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7. 원숙한 경험, 젊음의 패기
주님께서는, 노인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젊은이들이 기억을 보존하도록 또 크나큰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확신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와 그 문명이 이룩되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바로 노장청(老長靑)의 조화입니다. 노년 세대의 원숙한 경험, 장년 세대의 안정적 책임감, 청년 세대의 패기가 어우러져야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젊은이에게 노인과의 우정은 삶을 현재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또 모든 일이 자신의 역량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한편, 노인에게 젊은이의 존재는 자기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꿈도 성취되리라는 희망을 열어 줍니다.
8. 하느님의 개입, 성령의 이끄심
하느님의 개입은 언제나 함께 있음에서, 백성의 역사 안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충실하시어 새롭고 예상치 못한 경이로움을 이루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한 마리아는 몸소 성모찬송을 통하여 이 사실을 노래하였습니다(루카 1,51-55 참조). 사도 바오로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노장청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이치를 성령의 이끄심으로 알기를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느님께 바칠 때에는 먼저 하느님께서 앞선 세대를 통해 드러내신 업적을 잘 알고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며, 현재 이루고 계시는 은총에 대해서도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이루실 미래의 전망에 대해서도 믿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9. 하느님의 활동 방식
이렇듯이 세대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활동 방식을 더욱 잘 이해하려면 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가장 위대한 희망과 꿈은 일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대화와 관계 안에서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 돈과 재산,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소유’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방식을 보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고, 모든 세대를 포용하며 연결시킵니다. 그 사랑의 계획은 우리 존재보다 더 크지만, 우리 각자를 포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매 순간 우리를 부릅니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가상 현실이 우리를 가두어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는 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재에서 벗어날 준비가 된다는 뜻입니다. 노인들에게는 신체적 활력 저하에 연연하지 않고 놓친 기회를 후회로 곱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앞을 바라봅시다! 타성과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우리를 세세대대로 벗어나게 해 주시는 하느님 은총으로 우리가 빚어질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10. 세대 간의 만남은 하느님의 축복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젊은이와 노인의 만남을 통하여 당신께서 열어 주고 계시는 미래로 우리를 향하게 하십니다. 마리아의 방문과 엘리사벳의 인사는 구원의 새벽을 보도록 우리 눈을 열어 줍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들의 포옹을 통하여 넘치는 기쁨 안에 조용히 인간의 역사로 들어옵니다. 모든 이에게 권고하는 바는, 그 만남에 관하여 묵상하고, 젊은 성모님과 나이 든 요한 세례자 성인의 어머니 사이의 그 포옹을 스냅 사진에 담듯이 그려보고 빛나는 표상으로 정신과 마음에 새겨 보십시오.
11. 노인을 공경합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선물을 노인들에게서 받았습니다. 사회도 교회도 노인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과거를 현재에 맡기기 때문입니다. 노인을 공경합시다.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그들에게도 또 젊은이들에게도 그리고 노인 세대와 장년 세대와 청년 세대로 이루어진 우리 온 교회에도 작지만 소중한 희망의 표징입니다.
첫댓글 교황님께서 재정하신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날에 대한 깊은 의미를 알아 들을수 있게 성경 말씀 으로 견주어 말씀 해주시니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신지 충분히 이해 되었습니다.
유다인 가정에서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어린이에게 레위기를 제일 먼저 읽게 한다는 말씀에. 손주들에게 읽게 해야겠습니다.라는 생각 듭니다.
현재 제가 노인도 장년도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더열심히 살도록 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감사 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사사화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데, 가문의 전통과 가정의 문화로 뿌리내릴 때, 개인의 선택도 선행의 수준을 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선택이란 종교나 하느님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선과 악 중에 선을 고르고, 개인적 선과 공동의 선 가운데에서 공동선을 고르는 일이라는 이치가 널리 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