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천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탈출.33,7-11; 34,5ㄴ-9.28; 마태 13,36-43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2023.8.1.; 이기우 신부
오늘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phonso Maria de Ligori, 1696~1787)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18세기 이태리에서 활약한 그는 구속주 수도회를 설립하는 한편,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설교와 저술에 힘을 써서 현대 가톨릭 윤리 신학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윤리 신학은 교의 신학에 바탕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해 논하는 신학의 한 갈래입니다. 믿을 교리를 담고 있는 교의 신학과 지킬 계명 교리를 담고 있는 윤리 신학을 합하여 조직 신학이라고 합니다. 조직 신학은 성서 신학에 뿌리를 내리고 실천 신학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먼저, 믿을 교리는 신구약의 전체 성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를 바탕으로 하여 주요한 계시 내용을 해석한 짜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시작되어 로마 제국의 박해를 이겨내고 로마 제국 관할권으로 신앙이 퍼져나갈 무렵에 정비되었던지라, 믿을 교리는 당시 로마 제국을 사상적으로 이끌던 그리스 사상의 논리와 언어로 표현되었습니다.
즉, 창조주이신 하느님, 구세주이신 예수님, 인도자이신 성령, 이 세 하느님께서 하나의 같은 위격으로 존재하시면서도 세 가지 다른 역할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오랜 성찰 끝에 삼위일체 교리가 완성되었고, 이 바탕 위에 교회 안에서 이룩되는 구원의 신비를 담았습니다. 하나이오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인간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방주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교회 안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이라는 구원의 신비를 누린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렇듯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성서에 담긴 계시를 짜임새 있게 표현을 하려다 보니 정작 매우 중요한 계시 진리가 생략되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 사랑 실천의 결과에 대하여 죽음 후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등 세 가지 계시 진리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나 사도신경에는 이토록 중요한 주요 계시들이 빠졌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 사상을 도구로 하여 신앙고백문을 작성하던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밝히고 수호하는 일이 시급하고 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이 출현하여 진을 빼는 바람에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갖추신 존재로서 예수님을 부각시키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그 바람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계시진리를 미처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십계명에 담긴 지킬 계명의 대전제가 믿을 교리라는 인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하게 박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보완되어야 할 세 가지 사항,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존엄성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가정 윤리와 개인 윤리와 성 윤리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사회 윤리로 반영됨으로써 인간 존엄성이 사회 공동선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사항이 인생의 종말에서 잣대가 되어 심판받을 것이므로 각 분야 윤리의 목표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함으로써 지킬 계명이 사랑의 실천이 되도록 리모델링 하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알폰소가 심혈을 기울여 노력한 일은, 고대의 교부들이 미처 담지 못한 계시 진리까지 포함시켜서 이 믿을 교리를 지킬 계명으로 구체화시키는 일과, 이렇게 하여 온전하게 복원된 지킬 계명을 믿음을 증거하려는 진정성으로 지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모세로부터 전해 내려온 십계명에 대하여 유대교식의 낡은 해석을 벗어나서 사랑의 계명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신학 작업 역시 당대의 사유방식에 따라서 진행되었습니다.
즉, 믿을 교리가 고대 그리스의 사고방식을 수단으로 하여 진행되었듯이, 지킬 계명은 중세와 근세 유럽을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따라서 엄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아직까지 진행 중인 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다시 가톨릭 사회교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교리 쇄신작업입니다. 이 일을 수행함으로써 현대 가톨릭 윤리신학의 기틀을 마련했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를 교회가 전례에서 특별히 기념하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 취지에 따라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종합하자면 이렇습니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에서 하느님을 뵙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친구처럼 얼굴을 마주 대하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의인들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자애를 베푸시어 당신의 나라를 이룩하실 것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삼 대 사대에 이르기까지 죄악을 벌하시어 의인들을 거룩하게 하는 계기로 삼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만남의 천막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마태 13,41-43).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또 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히브 1,2; 루카 22,30). 그러니 교우 여러분, 하느님을 따라서 그분의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에게 공정을 베푸시기 바랍니다(시편 103,6). 천 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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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잘 보셨습니다. 덧붙여, 이에 대한 이론적으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글이 일전에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전해 드린 ‘뷱음과 공동선 서론- 사회사목을 위한 복음’입니다. 논평을 기다리고 있으니, 꼭 정독하시고 의견을 주시면 교구장 주교님께 드리기 전에 반영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지난 21일부터 오늘(8.1)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시에 있는 지인의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론의 논점은 내일 강론에서도 연속적으로 중요흐게 다루었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도 기다립니다.
복음과 공동선 자료를 데스크 탑에서 볼려고 하는데 맥컴에서 파일을 못열어 지체하고 있습니다.출력해 읽기에 너무 많아 꺼려지군요.
참고로 제 로그인 화면에서 가입신청 4명이 대기중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처리할 발법이 없군요.
가입 신청은 다 처리하였습니다. 분량이 다소 많기는 합니다만, 꼭 좀 읽어봐 주십시오.
오늘 강론은 현 시기 가톨릭 신자들이 보여주는 보수적이고 중신층형의 싱앙 행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나, 향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신앙 쇄신 방향을 내다보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를 왜 가르치고 보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강론 본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앙고백문 정식에서 누락된 중요 계시 진리는 세 가지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 그 첫째인데, 신앙고백문에서는 무색무취하게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첫째가는 주인이라는 것이 그 둘째인데, 신앙고백문에서는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고, 신자들의 자선에만 내맡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에게서는 ‘가난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이 그저 낯설기만 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이 첫째와 둘째의 계시 진리를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기준으로 상벌을 정하시겠다는 것이 셋째인데, 가톨릭 신자들에게서는 그저 막연히 착하게 살았으면 연옥을 거쳐 천당에 들어가고 죄를 지었으면 연옥에서 더 오래 단련을 받을 테지만 적어도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소극적 태도가 발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