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
김민주
맛있는 피자를 사겠다는 친구의 초대를 받고, 장식이 아름다운 고급스러운 식당에 갔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나이를 먹으니 사랑한다는 말보다 밥 사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좋다. 주된 메뉴가 김치찌개나 불고기였다면 나와 비숫한 연령대의 고객이 많았겠지만. 주 메뉴가 피자와 스파게티라서인지 고객들이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번호를 배정받고 순서를 기다리며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비 패턴에 대해 잠시 꼰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많이 기다리지 않고 운 좋게 전망 좋은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과 유리벽 사이 거리는 30cm가 채 되지 않았고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투명하기 그지없는 유리 한장이 안과 밖의 경계를 이루는 전부였다. 식당은 5총에 있었지만, 마천루 같이 높은 건물이어서인지 앉은자리 바닥 바로 옆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깥 전경은 더 낮아 보였다.
하지만 떨어질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리 한 장이 나에게 주는 안정감은 유리 그 자체의 기능보다 휠씬 큰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위험도 불안도 느끼지 않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전망은 즐거움을 더할 뿐이었다. 아마도 한 장의 투명한 유리가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절대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건설할 당시 안전사고가 아주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1937년 다리가 완공되기까지 많은 중국인 노동자가 바다에 빠져 사망한 것이다. 사고가 너무 많이 일어나자 일하려는 백인을 구하기 어려웠고 위험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 근로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사 현장 아래에 안전망 설치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안전망 설치 후 바다에 빠져 사망하는 근로자는 급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안전망이 공사 중 떨어진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 아니라 안전망 위로 떨어지는 일 자체가 큰 폭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믿는 구석이 생겼기 때문이다.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을 안전망 위로도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으니 생산성도 훨씬 더 높아졌다. 내가 이 전망 좋은 식당의 창가에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된 이유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금문교의 안전망이나 이 식당의 튼튼한 유리처럼, 종교도 사람에게 믿는구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일이 잘 진행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도 하지만, 어렵고 힘겨운 일이 생기더라도 신이 잘 인도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삶으로부터의 불안과 근심 걱정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하는 대가를 치르기는 해야겠지만, 종교가주는 '믿는 구석'은 삶에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도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이런 믿는 구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더 좋겠지만. 그런 실질적인 도움을 떠나 부모가 있음으로 해서 불안을 멀리하고.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크다. 믿는 구석이 있으면 힘겨운 일이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먼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불어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그렇게라도 치르고 싶은 것이다.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서의 식사는 투명하면서도 튼튼한 유리 한 장으로부터 생겨난 믿는 구석 덕분에 충분히 즐거웠다. 다음 예약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식당 직원의 친절한 불호령이 떨어질 때까지. 친구의 얼굴보다 창밖 풍경을 더 많이 본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던 식사 자리였다. 다음에 밥은 꼭 내가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