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룻 1,1-22; 마태 22,34-40 /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2023.8.25.; 이기우 신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시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루어지기까지, 팔레스티나 땅에는 아브라함의 적통을 이어 받은 후손들만 살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이스마일이나 이사악이 낳은 에사우 등이 비록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 편은 아니어서 방계 후손들을 남겼을뿐만 아니라 바벨론 평원에서 살던 아브라함의 조상들로부터 퍼진 직계 후손들이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들은 하느님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을 뿐 섬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인습적인 종교심이 본격적인 신앙심으로 도약하는 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고 깨닫는 은총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룻은 그런 모압족의 여인이었는데, 유다인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면서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룻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룻 1,16). 이 선언은 매우 장엄하였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룻은 유다 지파에 속하는 보아즈와 혼인하여 다윗의 3대 조상이 되는 오벳을 낳았습니다(마태 1,5). 이로써 예수님의 조상 중에는 모압족이 포함되게 되었고, 이렇게 신앙은 순수 유다인 혈통을 넘어서는 개방성을 지니고 보편성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다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하느님 신앙은 예수님을 통해서 결정적인 전환을 이룩합니다. 사두가이 유다인들은 소나 양을 불태워 유다인들의 죄를 없애준다는 속죄 제사로 사제직을 수행하다가 성전 정화 사건으로 단죄를 받은 바 있었는데, 바리사이 유다인들도 나서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들었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
본시 십계명으로 시작된 율법이 그 당시에는 613가지로 늘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을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율법 교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그치지 않았던 터이기는 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떠보기 위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십계명의 첫째 계명을 꼽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제까지 바리사이 유다인들이 소홀히 취급하던 또 다른 계명까지 더 추가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신명 6,4-5; 레위 19,18).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4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가르침으로 십계명의 종교였던 유다교를 넘어서셨습니다. 사랑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2014년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포함한 124위 한국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리고자 한국을 찾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진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강론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루어진 승리를 경축합니다.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의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증언의 순수성이었고,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는 이 가르침이 동아시아 문명에 널리 알려진 한자문화권 언어로는 경천애인(敬天愛人)입니다. 하느님을 흠숭하되 목숨과 마음을 다하는 정성으로 할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진정성으로 해야 한다는 뜻으로서, 바로 예수님께서 6백여 유다교 계명 가운데에서 골라내신 그 계명입니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 전에 여순 감옥에서 남긴 마지막 유묵의 글씨도 이 경천애인입니다. 이 글씨가 안 의사를 감시하던 일본인 간수가 받아서 집안 가보로 보관하다가 교황 방문 직전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된 바 있습니다. 이 유묵에는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란 글씨와 함께 왼쪽 약지를 단지한 손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경천’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경천애인의 앞 두 글자로 풀이되며, 안 의사가 남긴 64점의 유묵 중 가장 마지막으로 쓰인 것이자 천주교의 정신을 담은 유일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교우 여러분, 경천애인의 정신과 함께, 하느님 사랑으로 겨레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경천*귀한글 잘 간직 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그래야합니다. 조선 왕조와 유림들도 ‘경천’의 글귀는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경천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백 년 동안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예 ‘경천’의 뜻도 모르는 무신론자들(과학만능주의자들, 불가지론자들, 자본주의자들, 현세적 쾌락주의자들)이 수두룩한 형편이어서, 첝 교 신자들이 순교정신으로 경천을 증거해야 합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023.8.25. 강론중 네 마음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 이것이 가장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너 자신처럼사랑해야한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흠숭하되 목숨과 마음을 다하는 정성으로 할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진정성으로 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신부님 오늘 강론 감사합니다.